유재석처럼 말하고, 강호동처럼 행동하라
서병기 지음
유재석, 한발 물러나 세심하게 배려하라
시행착오는 도약의 밑거름
유재석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전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예능 MC다. 그가 진행하는 주간 프로그램은 무려 4~5개로 거의 살인적인 일정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을 겹치기 진행한 스타는 없었다. 그런데도 아직 그의 진행을 식상해 하지도 않고, 싫어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오히려 앞으로 더 롱런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유재석이 1991년 제1회 ‘KBS 대학 개그제’로 연예계에 입문한 후 17년 동안 쌓아 온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실 유재석에게 항상 좋은 이야기만 나온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을 많이 맡았다는 죄(?)로 비판적인 기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무한도전>을 제외한 몇몇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점을 근거로 유재석이 과도하게 겹치기 출연해 프로그램의 신선함과 참신성이 사라지고 진부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기 복제라는 이야기도 들렸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무한도전>에서의 맹활약으로 ‘역시 유재석’이라는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따지고 보면 유재석에 대한 비판이나 찬사는 모두 그의 높은 인기를 반영한 현상이다.
유재석의 ‘MC 파워’, 그는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을까? 유재석은 지석진과 함께 <서세원의 토크 박스>를 통해 부각됐다. 말 개그는 그의 특기 중 하나다. 말 개그도 처음부터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형에 가깝다. 초창기 <연예가 중계> 리포터 시절, 유재석은 말을 더듬는 실수를 반복했다. 방송에서도 초기엔 카메라 울렁증이 심했고 무대 공포증까지 겪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땀을 뻘뻘 흘리며 연예가 소식을 전하던 그를 애처롭게 쳐다보던 MC 임백천의 모습이 요즘도 자료 화면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유재석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배려, 마음을 얻는 가장 큰 열쇠
유재석의 진행 스타일은 타인을 배려하는 겸손 개그다. 그래서 ‘배려형 MC’라고들 말한다. 물론 출연자에게 약간의 면박을 주긴 하지만 빈틈이 있어서 번번이 상대의 반격을 허용한다. 이때 출연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들 한마디씩 하다가 이내 소란스런 분위기로 바뀌고 만다. 요즘 오락물의 웃음과 재미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출연자들의 캐릭터도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구축된다. 유재석은 겸손과 배려라는 덕목으로 확고한 리더십을 구축했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남보다 앞서 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사회에, 유재석의 ‘배려형 리더십’과 ‘서번트(섬김형) 리더십’은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 준다. MBC 예능국 고재형 책임 프로듀서의 말대로 유재석은 게스트와 출연진을 편하게 해 줘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최대한 살려 주는 예능 MC다.
유재석은 말에 강하다. 방송 사고가 날 염려가 전혀 없을 정도로 언어 순화가 잘 돼 있고 깔끔한 화술을 갖고 있다. 게다가 자신을 낮출 줄 안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능력만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자칫하면 무슨 무슨 척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재석은 깔끔한 화술에 호감 유머를 적시에 찔러 넣을 수 있는 재치를 겸비했다. 이영애가 게스트로 출연한 2007년 5월 <무한도전> 방송은 그런 유재석의 역량이 잘 발휘됐다. 유재석은 이날 이영애와 CF 촬영장에서 자신의 코디네이터가 조명기를 넘어뜨리면서 소란이 벌어지자 “죄송합니다. 우리 코디가 CF가 처음이라”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유재석의 역할을 농구로 따진다면 ‘가드’다. 가드의 볼 배급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유능한 골게터도 슈팅을 시도할 수 없다. 유재석은 슈팅 폼이 희한한 선수들에게까지 일일이 볼 배급을 해 주는 배려형 명가이드다. 가드가 욕심을 내 자신도 포인트를 올리려고 자주 슈팅을 날리게 되면 포워드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유재석은 다섯 선수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이들의 득점을 도와줘 팀 전체가 살아나게 해 준다.
격의 없이 어울리는 리더
요즘 팀장은 팀원들이 어려워하는 존재가 되면 안 된다. 팀원을 부려먹기만 하는 팀장,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팀장, 다가가기 어려운 팀장의 이미지로는 팀원들로부터 외면 내지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팀원들과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정말 격의 없이 어울릴 줄 알면서도 원활하게 업무를 조절하고 끌고 갈 수 있는 ‘형’ 같은 팀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팀장을 우리는 유재석에게서 볼 수 있다. 유재석은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메인 MC지만 항상 게스트와 함께 어울린다. 그냥 형식적으로 어울리는 게 아니라 게스트와 똑같은 수준에서 논다. <무한도전>에서는 다섯 멤버 못지않게 지질하게 놀면서 상황을 정리해야 할 때는 바로 분위기를 바꿔 깔끔하게 매듭짓는다.
웃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권위를 무너뜨려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2가지 유형이 있다. 남을 무너뜨리는 유형과 자신을 무너뜨리는 유형이다. 유재석은 후자다. 그래서 그의 진행 스타일을 일러 ‘겸손 MC’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MC를 맡게 되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을 때가 많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속한 조직, 자리에서 돋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유재석은 진행자로서 이런 강박을 떨치고 상황에 따라 진행자와 게스트의 경계를 허물어 한데 어울린다. 자신을 망가뜨림으로써 웃음의 소재를 기꺼이 제공한다.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조직의 모든 관계는 대화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인 관계가 원만하거나 조직을 잘 통솔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말을 조리 있게 잘 한다는 것이다. 좋은 화술은 관계의 폭을 넓히고 더 돈독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말만 잘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화술보다 더 강력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북돋울 수 있는, 배려가 담긴 말이다. 비난과 질타보다 칭찬과 배려의 말이 호감을 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듣기 좋은 소리만 하거나, 모리배처럼 임기응변에만 능해서도 안 된다. 표면적인 예의는 상대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다. 단지 겉치레에 그친다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 줘도 진심 어린 배려로 와 닿지 않는다. 유재석은 웃음을 만드는 개그맨인데도 남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너무 정제된 말만 하면 재미가 없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자신이 망가질지언정 남을 비방해 웃기지는 않는다. 유재석의 이런 배려형 개그는 어느 한순간에 콘셉트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실전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로 계발된 것이다. 누구나 자신과 잘 어울리는, 세심하고 배려 담긴 화법을 구사하면 대인 관계에서, 직장에서, 인생에서 성공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하고 어찌 보면 소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유재석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그의 개그가 겸손과 배려, 친절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은 조직 안에서도 팀원들과 잘 융화하며, 팀원과 잘 융화하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유재석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배려형 화법’을 터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건 상대의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이 돼 보라는 뜻이다. 만약 당신이 팀장이라면 ‘어떻게 하면 모든 팀원이 제 역할을 잘 발휘하고, 골고루 기회를 나눠 가지며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 보자. 사원이라면 동료와 상사의 사소한 일까지도 말로나마 챙기고, 아침에 건네는 인사 한마디에도 관심을 담아내자. 배려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상대의 가슴에 큰 물결로 남는다.
강호동, 최강 팀워크를 만드는 세심한 리더
꼬리표는 떼라고 있는 것
강호동은 경남 진양의 이반성이라는 한 시골 마을의 평범한 가정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씨름을 위해 합숙 생활을 했고. 프로 팀인 일양약품에 입단해 열아홉 살에 백전노장 이만기 선수를 눌러 천하장사가 됐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은퇴를 선언하고 1993년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이경규가 강호동의 방송계 입문을 권유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경규는 피디에게 강호동을 소개시켜 주며 강호동이 방송에서 뜨지 못하면 자신이 은퇴하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강호동을 봤을 때 60퍼센트 정도는 성공 가능성이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씨름계에서 강호동의 연예계 데뷔를 워낙 반대해 더 강력하게 강호동의 성공 가능성을 피력했다고 했다.
강호동은 예능 프로그램의 톱 MC가 되기 힘든 조건을 지녔다. 강한 경상도 악센트에 소리를 지르는 듯한 발성은 정확한 발음을 구사해야 하는 MC로서는 중대한 결격 사유가 된다. 하지만 이제 경상도 사투리와 큰 목소리는 강호동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뿐 아니라 강호동은 덩치가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위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제 오락 프로그램 MC 초기만 해도 큰 덩치로 참가한 연예인들을 괴롭히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콘셉트를 구사하기도 했다. 아마 이런 모습을 쭉 이어 갔다면 단명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는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콘셉트를 바꿔 시청자들의 비판과 편견을 피해갔다.
게다가 강호동은 ‘시골 사람’ 이미지를 참 잘 활용한다. 유재석이 하면 민망할 모습도 강호동이 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강호동은 아무리 민망한 구애를 해도 용납된다. 없는 기술을 억지로 만들어 보여 주려 하지 않고, 원래 모습을 특기로 활용하는 강호동의 방식은 ‘기획의 승리’라고도 할 만하다. 약점이 많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도전하는 정신, 또 도전 과정에서 자신의 약점들을 고치고 매력으로 바꿔 나가는 게 강호동의 최대 장점이자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다가가는 리더가 사람을 얻는다
강호동은 지상파 3사 방송국에서 가장 차별화가 잘 돼 있는 MC다. 현재 프로그램 3개를 진행하는데 프로그램마다 개성과 특성이 모두 다르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대세라고 해도 실은 가짜 설정이 어느 정도 가미된다. 연예인, 소위 ‘선수’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웃음의 포인트를 찾고 방송 분량을 맞춘다. 하지만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은 방송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반대로 연예인들이 이들의 재능에 박수를 쳐 주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한 일반인들이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데다 방송 매커니즘 자체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날 것 그대로의 에너지’가 분출된다. 가짜 설정이 없는 100퍼센트 리얼 버라이어티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재능 있는 일반인 출연자들을 상대로 몸을 아끼지 않는 진행을 펼친다. 그는 일반인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 연예인 패널과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재미를 만들어 낸다. 무대가 낯선 일반인 출연자들이 재주를 최대한 뽐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출연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가 나오면 무릎을 꿇고, 필요하면 아예 드러누워 버리는 등 어떠한 자세도 취해 준다. 사실 예능물을 전문으로 하는 연예인들은 일반인과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일반인들은 예측불허의 행동을 하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돌발 상황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호동은 다양한 배경의 출연자들, 가난한 사람부터 잘사는 사람, 세 살 어린 아이부터 여든 할아버지까지 정말로 다양한 일반인을 상대로 몸을 아끼지 않고 파트너가 돼 준다.
현장형 팀장, 강호동
사회에서 강호동 같은 스타일은 현장형 팀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실 팀장이 되어 부하 직원들을 이끌고 최고의 성과를 올린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팀원들 뒤차다꺼리에 이젠 지친다.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차라리 팀원으로 돌아가고 싶다.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니 원.” 한국의 팀장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볼멘소리를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을 것이다. 팀원이었을 때는 말도 잘하고 협상에서도 밀리지 않으며 추진력까지 갖춘 유능한 사람도, 팀장이 되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기 일쑤다. 팀원들은 자신이 맡은 일만 충실하면 되지만, 팀장은 팀원 모두가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일의 능률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박 2일>을 이끌어가는 강호동은 팀장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했다. 강 기자는 “조직의 상층부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말단 직원들과 어울리며 때로는 대폿잔도 기울일 줄 아는 서민적인 리더가 강호동 식이다. 자칫 현장에 너무 동화되다 보면 리더의 본업을 잊어버리는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강호동의 첫인상처럼 타고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면 이러한 단점도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강호동은 끊임없는 노력 끝에 자신의 단점을 매력으로 바꿔 냈다. 험상궂은 외모와 경상도 억양은 진행자가 되기에 악조건이었지만 그런 단점을 오히려 적절히 극대화시켜 자신만의 개성으로, 더 나아가 프로그램의 특색으로까지 창출했다. 이런 ‘위기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강호동은 끊임없이 연구하는 유형이다. 자신의 전부를 개혁하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특징은 그대로 살린 채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리노베이션’ 유형이다. 그래서 강호동의 진행 스타일은 초창기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상당히 다르지만,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기 때문에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승자독식’이라고 하지만 정상에 오른 후에는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나눠 줄 줄 아는 포용력도 가졌다. 후배들을 관찰해 각각의 특성을 찾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1박 2일>에서 강호동이 “승기야!”, “몽아!” 하는 것은 호칭이 아니라 일종의 연기다. 후배들이 부각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강호동은 멤버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각종 시도를 하다가 이거다 싶으면 밀어붙인다. 다섯 명의 후배들에게 업무와 권한도 적절하게 위임하고 있다. 사실 팀원들의 숨겨진 재능을 찾는 일은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다. 요즘 팀장은 업무 능력보다 인적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자질로 평가된다.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를 조화롭게 통합할 수 있는 인물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경규, 변화의 속도까지 읽는다
썩어도 준치, 시간이 흘러도 빛난다
그는 일반 스타와 다른 행보를 걸었다. 보통 오락 프로그램에서 스타로 뜨면, 한동안 겹치기 출연을 일삼다 어느 순간 불러주는 데가 없게 돼 슬럼프에 빠지는 게 일반적인 코스다. 그러나 이경규는 이런 열악한 오락 프로그램의 매커니즘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 그는 어느새 정상 자리를 김용만이나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 김제동 등에게 살짝 넘겨주고 자신은 ‘주연 같은 조연’을 맡고 있다. 역할이나 비중 면에서는 밀려나는 듯 보이지만 파워는 그다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스타가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참 보기 좋다. 특히 나이 들어감에 따라 역할 변경을 시도함으로써 권력화에서 비껴 난 모습도 신선하다. 카리스마가 강하다는 평가가 어느새 독재자처럼 행동한다는 말로 바뀔 수 있는 자리가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MC이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이런 고민의 해법을 전성기였던 1998년 감행한 일본 유학에서 어느 정도 찾은 듯하다.
악착같이 일해도 즐기는 사람 못 당한다
일상적인 소재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려면 상당히 디테일해야 한다. 이경규는 개그의 소재를 어디서 얻는 것일까? 억지로 머리를 쥐어짜는 것은 안 한다고 한다. 굳이 새롭고 특별한 개그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사색을 많이 한다. 나이답지 않게 상상을 즐기기도 한다. 낚시를 자주 가는 것도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낚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스포츠 피싱이 아니라 대낚시로 붕어를 잡는, ‘기다리는 낚시’다. 책과 신문도 대충 본다고 한다. 다른 오락 프로그램도 충실히 보지 않는다. 남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경규는 독자적인 상상을 많이 해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상상이 생활 속의 공감대를 낳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개그는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동물적 감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 감각이 연륜을 만나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감각만 믿고 마냥 녹화에 임하지는 않는다. 사전 회의 역시 열심히 참석한다. 회의에서는 스토리를 완전히 만드는 게 아니라 기본 콘셉트만을 잡고, 현장에서 애드리브로 살을 붙인다. 일상적인 대화로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방식은 이제 생활이 되었다.
이경규는 인생이란 기획된 삶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도 겨우겨우 지금까지 왔다고 했다. 기대했던 프로그램이 잘 안돼 고민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자신이 그래도 지금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성실함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경규는 성실하게 하되 방송 자체에 임할 때는 너무 열심히, 악착같이 하면 안 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대충대충 놀면서 즐기며 일해야 보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너무 열심히 한 녹화 장면은 편집 때 잘라달라고 담당 피디에게 부탁한다. 최선을 다하는 건 뒤에서 보여주면 된다. 부담감을 함께 떠안겨 주는 웃음은 진짜 웃음이 아니라고 말이다.
* 어떤 사람도 항상 잘나갈 수는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전성기가 있으면 침체기나 슬럼프가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힘든 상황들을 어떻게 돌파하느냐다. 승승장구하던 사람도 잠깐의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해 좌절하기도 한다. 정상에서 비켜난 상태일지라도 현재 자신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부족한 점은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똑바로 바라보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개그맨 이경규 역시 항상 전성기를 누렸던 것 같지만 그동안 맡은 코너가 수도 없이 폐지되는 시련을 겪어 왔다. 누구에게나 위기와 좌절의 순간은 온다. 입시에 낙방할 수도 있고, 면접을 망칠 수도 있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지 못해 원성을 살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위기 상황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 웬만한 시련에도 끄떡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슬럼프는 자기 발견의 시간이다. 더 이상 과거의 방법을 계속할 수 없는 시간이자 가파른 상승 곡선으로 진입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낙담하지 마라.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온다.
김미화, 지혜로운 이노베이터
개그우먼에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원래 ‘시사’라고 하면 가방 끈이 긴 사람이나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제껏 그래왔으니까 말이다. 개그우먼이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다고 하면, 일단 우려와 편견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김미화는 MBC FM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과 SBS 이슈 토크 프로그램 <김미화의 U>에서 차별화된 진행으로 호평을 받으며 지금까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녀는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져 일반 대중들이 피하기 쉬운 시사 프로그램을 쉽고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많은 청취자와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연예인, 그것도 개그우먼의 활동은 거의 예능 프로그램에 국한된다. 교양 프로그램을 연예인이 진행한다고 하면 일단 선입관을 가지고 바라본다. 프로그램을 이끌어 갈 만한 지식과 상식을 갖추고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ㆍ교양 프로그램에서 정진영, 박상원, 김상중 등 배우들이 진행을 맡기도 했지만 작가가 써 준 대본을 심각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터 역할에 그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김미화는 이와 다르다. 김미화는 당일의 주요 뉴스를 전하고 거기에 해설을 곁들이며 그날그날의 이슈들을 분석한다. 또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각 방면 전문가들과 전화 연결을 해 생방송으로 대화를 이끌어 간다.
그녀는 방송에서 전문가를 모시거나 특정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전개할 때 자신 역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문가들이 비전문가인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 단계 쉽게 설명하고, 자신은 그것을 청취자가 듣기 좋게 한 단계 더 쉽게 설명한다고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질문부터 하고 본다. 사실 청취자들도 자신처럼 답답한 경우가 많을 것 같아서다. 그녀가 진행하는 방송이 쉽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은 청취자에 대한 배려도 있지만, 가능한 한 어려운 이론이나 용어를 개념적으로 해석하려 하지 않고 쉬운 단어를 사용해 특유의 시원한 말투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어렵고 논쟁적인데, 김미화는 이를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쉽게 진행해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평이다.
성실함은 생명줄과도 같다
김미화는 <심야 토론>이나 <100분 토론> 등 기존 시사물 진행자들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었다. 그녀는 섣불리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진행하기보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한다. 게스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땐, 세상을 보는 그녀 특유의 따뜻한 시선까지 느껴진다. 진행 역시 주부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김미화의 U> 제작진이 김미화의 최고 장점으로 ‘편안함’을 꼽는 이유를 알 만했다. 김미화는 최근 맡은 <주철환ㆍ김미화의 문화 전쟁>에서도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다. 방송을 보면 문화에 대한 내용을 무겁지 않으면서도 날카롭게 다뤄 보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은 MC지만 문화를 보는 방척객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녀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방송국에도 항상 일찍 온다.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면 성실히 잘해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도록 무조건 열심히 한다. 방송 영역은 넓혀 나가지만 그 외 영역은 절대 넘보지 않는다. 연예인들이 흔히 하는 레스토랑, 쇼핑몰 같은 사업이나 부업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김미화는 목표도 설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해 나가 오랫동안 방송에서 쓰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그녀의 평소 소신이다.
* 우리는 종종 선견지명을 가진 한 사람의 혜안이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려 냈다는 뉴스를 접한다. 이른바 개척자 리더십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혹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김미화는 개그우먼이 한 번도 도전한 적 없는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색깔로 차별화된 방송을 만들었다. 기존 시각대로라면 개그우먼은 절대로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시사 프로그램은 딱딱하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진행해 차별성을 인정받았다.
만약 그녀가 다른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와 똑같이 차분하고 다소 형식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녀에 대한 평가는 지금 같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것, 남들과 비슷한 것을 가지고는 당신을 어필할 수 없다. 흉내만 내다가 아무 소득 없이 일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때는 생각의 틀을 깨고 관습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보자.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견지하되,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 게 중요하다. 자기만의 개성으로 독자적인 자리를 만든 사람은 웬만한 도전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남들과 다른 1퍼센트 스페셜 전략을 가져라.
박명수, 21세기 아이콘은 2인자 리더십
시대가 요구한 인기, 대세를 파악하라
평범한 외모로 요즘 전성기를 구가하는 연예인으로는 박명수와 김제동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떨어지는 외모에 주눅 들지 않고 주류 무대에서 독자적인 영역까지 구축하고 있다. 박명수는 오랫동안 오락 프로그램에서 ‘폭탄’이었다. 그는 매번 구박을 받으면서도 자기모멸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잘난 척 만용을 부리며 능청스럽게 자신의 사업체를 홍보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박명수의 호통 개그는 거부감을 주기보다 평범한 남녀에게 오히려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한다.
이제 박명수는 오락 프로그램 섭외 상위권 게스트가 됐다. 물론 그의 호통 개그는 시대가 허락한 면이 있긴 하다. 호통 개그가 유행이 된 것은 인공적인 것, 가공한 것에 대한 식상함이 크게 작용했다. 가벼움과 직설적임, 털털함, 솔직함이 미덕이 되는 시대에 다소 무례한 호통 개그는 오히려 쉽게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 박명수는 인터뷰에서 “요새 애들은 에둘러 말하는 거 딱 질색이에요. 다들 급하죠. 바로바로 빵빵 터뜨려 줘야 귀에 쏙 박히거든요”라며 자신의 개그가 인기를 끈 이유를 신세대들과 ‘코드’가 맞아서라고 설명했다. 직설적인 캐릭터가 통하는 시대라면 호통 개그도 먹힐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오를 데 없는 1등보다 늘 노력하는 2등이 낫다
사실 박명수는 나이 많은 열등생 콘셉트다. 사회로 치면 큰소리만 치는 무능한 중년 남자가 박명수의 캐릭터다. 별 볼일 없는 상황에서 도리어 호통을 치는 아이러니가 박명수와 딱 맞아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호통 개그는 그다지 잘나지도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의 심정적 후원을 받는다.
게다가 그는 자신도 망가지는 걸 즐긴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을 때도 많다. 문제가 된 발언을 할 때도, 그는 다른 출연자들로부터 ‘얼굴이 저질’이며 ‘아이 딸린 40대 재혼남’이라는 반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까 호통 개그는 사실은 당하는 개그다. 호통을 쳐 상대에게 ‘나의 약점을 한번 건드려 줘’ 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뻔뻔스럽게 호통을 쳐도 시청자들은 이를 이해해 준다.
박명수는 또 스스로 2인자를 표방한다. <무한도전>에서 2인자로 지내는 사이 이제는 1인자의 자리를 넘보는 단계까지 왔다. 그는 인터뷰에서 ‘넘버 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털어놨다. “더 이상 오를 데 없는 1등보다는 늘 노력하게 만드는 2등이 훨씬 낫죠. 메인 MC를 했다고 넘버원이 아니라 시청자가, 더 나아가 자신이 1등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에만 진정한 1등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2인자를 ‘1위를 꿈꾸기 좋은 위치’라고 해석했다. 그 역시 1인자에게 기죽기보다 오히려 면박을 주면서 차별화를 통해 존재감을 강화시켜 나갔다. 역사는 2인자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문화 다양성의 시대에는 어설픈 1인자가 되는 것보다 2인자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낫다.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뭘해도 삐거덕거리고 왠지 쿵짝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내 마음대로 사람을 골라 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에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누구와 함께 일해야 상승효과를 얻고 더불어 발전할 수 있는지, ‘콤비 플레이’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틈틈이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최상의 성과를 창출해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연출하면 된다. 그리고 콤비 플레이는 상하 관계가 아닌 역할 분담에 의해 효율을 강화시켜야 한다.
박명수와 유재석은 서로 윈윈 전략으로 찰떡같은 콤비 플레이를 보여 준다. 사람들은 박명수가 유재석에게 묻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럴 만도 하다. 함께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많은 데다 자신의 캐릭터를 잘 살려주는 유재석이 있었기에 전성기도 가능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박명수와 유재석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어울림으로써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윈윈 관계’다. 말하자면 방송에서 한 사람이 실수를 저지르면, 다른 한 사람은 이를 재빨리 수습해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고 재미를 극대화하는 식이다. 유재석 역시 박명수가 있어 풍부한 화제를 펼쳐 보일 수 있고 진행에도 완급 조절을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 뛰어날 수는 없다. 성격이나 개성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발휘해 매력으로 만들어 내느냐다. 이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동료와의 관계 맺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활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다면, 그 두 사람은 이미 1인자-2인자 관계가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라. 쿵! 하면 짝! 하고 장단을 맞추는 사람, 나와 딱 맞는 최고의 콤비를 찾아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