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회의 울렁증
Part 1 쓸데없는 회의에서 벗어나기 프로젝트
결론만 밀어붙이지 말고 상대방을 이해시켜라: 회사에서 이미 결정한 것을 보고만 할거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듣는 척하는 회의가 버젓이 열리고 있다. 누군가가 반대라도 하면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때로는 현실을 모른다고 비난한다. 몇 시간씩 이름뿐인 논의를 거듭하고서 결국에는 “결정 사항이니 미안하지만 모두 양해해주십시오” 하는 말로 막을 내린다. 이래서는 그저 ‘모든 사람의 의견을 바탕으로 결정했다’는 겉치레뿐인 민주주의적 절차를 밟기 위한 회의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회의는 ‘노’를 말하는 장이다. ‘예스’를 바라는 상사에게 정면으로 ‘노’라고 주장한다. 물론 노를 말하기 위해서는 자료적인 뒷받침과 확실한 이론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반대 의견을 많이 내서 “이래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는 편이 좋다” 하고 격론을 벌인다. 이 찬반의 싸움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이것이 바로 바람직한 회의다. 예스만을 바란다면 귀중한 시간을 들여 회의를 하는 의미가 없다.
일에는 의논할 필요가 없는 일이 있다. 의논할 필요가 없는 일을 의논의 장으로 가져오려고 하기 때문에 사원들은 힘들어한다. 결정 사항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라면 회의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회의가 불가피할 때는 “이것은 결정 사항이므로 모두 받아들여주기 바랍니다. 다만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서 앞으로 일해 나가는 데 참고로 하고 싶습니다” 하는 식으로 미리 모든 구성원에게 알려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결정 사항의 틀 안에서 건설적인 의논을 할 수가 있다. 이 때 참가자인 사원은 단순히 상의하달(上意下達)의 회의라는 것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결정 사항이라고 판단되면 그 틀 안에서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력 있고 유연한 사원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전혀 급하지 않은 긴급회의는 실효성이 없다: 긴급회의라는 게 있지만 실상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서둘러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생겼거나, 바로 의사 통일을 꾀해야 하거나, 고객이나 거래처와 큰 문제가 생겨서 바로 선후책을 마련해야 하는 등의 긴급사태가 발생해 대책 마련이 급한가 싶어 달려가 보면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매사를 지나치게 고지식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미처 생각지 못한 사태가 발생하면 바로 공황상태에 빠져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소집된 관계자들은 잔뜩 긴장해 회의실에 들어서지만 주최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뭐야, 고작 그런 일이야?’ 하고 힘이 쭉 빠진다. 이런 일이 잦으면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이 큰일났다고 해도 전혀 큰일로 생각지 않게 되고 만다.
본시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이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여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다. 어떤 때든 긴급회의는 필연적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열게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긴급회의가 쓸데없다고 하는 것이다. 회의의 성패는 준비 상태의 좋고 나쁨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데,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긴급회의가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회의는 빈틈없이 준비해야만 실효성이 있다. 다만 정말로 긴급사태가 발생하여 그 상황을 관계자에게 철저하게 주지시키기 위한 긴급회의는 당연히 열려야 한다.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 회의를 열게 되었을 때는, 그 긴급함을 참가자한테 확실하게 전해야 한다. 긴급회의가 열리는 경우에는 정말로 그 사안이 긴급한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모든 참가자가 공통의 인식을 갖도록 논의해나가야 한다. 주최하는 사람이 당황해 쩔쩔매며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계속 질문을 하고, 구체적으로 개개인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모이자는 식으로 대충 시작하지 말라: 지루하게 격론을 거듭하는 회의가 많은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하고 모두 발언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급기야는 각 부서로 가지고 돌아가 다시 회의를 한다. 결국 아무런 진전 없이 그저 피로감만 남는다. 이런 회의가 나타나는 첫 번째 원인은 사전 준비 부족이다. 더욱 나쁜 것은 ‘일단 모든 관계자가 모여 이야기해보자’는 식으로 대충 시작하고 보는 회의다. 말 그대로 ‘일단’ 시작하는 만큼 원래 아무런 준비도 없고, 논점도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목적이 좁혀질 리가 없다.
준비가 잘 되었는데도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경우에는 사회와 진행을 맡은 사람이나 참가자의 능력 부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의논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지휘봉을 쥔 사회자의 능력 여하에 따라 그런 수렁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의견이 거의 나오지 않고 구성원들이 완전히 의기소침할 때는 조금 쉴 수 있게 해 분위기 쇄신을 꾀하면 좋다. 여러 의견이 있어서 하나로 수렴하기 어려울 때는 참가자 가운데 가장 경력이 많은 사람한테 의견을 물어보는 등 자리에 맞는 방책을 택하면 된다. 당연히 사회자에게는 임기응변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므로 사회자에게 그런 능력이 없으면 회의가 엉망이 되고 만다.
또 참가자는 미리 자료와 보고서를 잘 읽어두어야 한다. 나누어준 자료를 회의 직전에야, 심지어 회의가 시작한 뒤에야 처음 훑어보아서는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참가자가 참 많은 듯하다. 보고서와 자료를 미리 훑어보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한 어떤 발언을 할지, 충분히 준비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그 발언에 어떤 의견과 반론이 나올지 상정해 예상 문답을 만들어 보는 정도의 준비를 하고 회의에 임하기 바란다. 회의는 일종의 싸움터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장이다. 상사는 부하의 발언과 그 이후의 대응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평가를 내릴 것이다. 지적인 발언으로 이목을 끌면 능력 있는 부하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고 그 사람이 하는 일 전반에 대한 평가가 높아질 것이다.
편리한 IT회의 시스템이 항상 뛰어난 것은 아니다: 정보 통신(IT) 기술의 발전은 참으로 눈부시다. 덕분에 한곳에 모여 의논을 펼치는 회의의 풍속도도 상당히 달라졌다. 이러한 IT회의에는 먼저 회의를 위해 이동하는 경비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소의 제약이 거의 없으므로 의사와 관계된 참가자가 모이기 쉽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이메일을 통한 왕래는 발신과 수신 기록이 남기 때문에 나중에 그런 말 한 적 있느니 없느니 하며 비생산적인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다. 한꺼번에 이메일을 보낼 수 있으므로 순식간에 같은 내용을 전달하거나 보고할 수 있는 것도 편리하다.
그렇다고 IT회의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것은 아니다. 요즘 IT회의가 일반적이 되면서 필요 이상으로 정중하고 시각에 호소하는 회의 자료를 요구하게 되었다. 도표를 입체화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사진이며 비디오 영상까지 등장하는 감동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회의 자료가 최근 도처에서 눈에 띈다. 그래서 자료 작성자는 어느새 통상적인 업무를 내팽개치고 자료를 만드는 데 열을 올리게 된다. 회의는 하드웨어가 아니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회의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자사의 환경을 잘 생각해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 자세다. 회의 자료만 해도 알기 쉽고 보기 쉬운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데, ‘내용이야 어떻든 보기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풍조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자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려서는 그야말로 주객전도다.
Part 2 바보 같은 참가자들 몰아내기 프로젝트
보고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읽지 말라: 회의를 위해 나누어준 보고서와 각종 자료 따위의 문서는 참가자가 읽어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회의 때는 사회자나 문서를 나누어준 담당자가 요점만 간추려서 소개하는 정도면 되지,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자 한 자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쓸데없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멍청한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한다. 물론 일종의 책임 회피 방책으로 전문을 낭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회의 중에 문자로 정리한 것을 새삼스럽게 읽을 필요는 전혀 없다.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그것도 이미 문자로 작성된 것을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으므로 쓸데없는 짓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길이 없다.
사회자는 만약 낭독을 시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비록 그 사람이 상당한 실력자라고 하더라도 “문서에 있는 것은 나중에 읽으면 알 수 있으므로 요점만 보고해주십시오” 하고 용기 있게 지적해야 할 것이다. 또 이런 멍청한 사람이 보고자로 나서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보고는 문서를 배포해 이미 했으니 발표하는 분은 아주 짧게 해주십시오” 하고 선수를 치는 것도 좋다. 사건 개요나 보고서 전문을 낭독하는 것은 전혀 무의미하다. 만약 주최자가 보고서는 전문을 낭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바로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문제에 응용하기도 어려운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 회의는 좋게 하든 나쁘게 하든 자신의 권력과 실력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절호의 기회로, 충분한 자기표현의 장이다. 틀림없는 자기표현이라면 전체가 활성화되어 토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므로 훌륭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나, 의제에서 탈선해 오로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늘어놓기 시작하는 사람이 하나 둘 꼭 있다. 이런 사람은 마치 그런 기회를 기다려왔다는 듯 종종 “나라면 말이죠.”하고 입을 연다. 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면 그나마 나을 것이나 현재의 문제에 전혀 응용할 수 없는 단순한 자기 자랑일 때가 많다.
자기 무용담은 술자리에서 한껏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할 이야기이지 회의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자기 자랑이나 무용담을 늘어놓으려는 것은 대개 상사나 경영자다. 그런 만큼 말허리를 끊고 의논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사회자와 참가자로서는 몹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장 올바른 것은 일단 스스로 일단락 지을 때까지 이야기하게 내버려둔다. 그리고 상대가 후유하고 한숨을 쉬는 때에 천천히 시계를 올려다보면서 “여기서 5분간 쉬겠습니다” 하고 선언한다. 잠시 쉬면서 흐름을 끊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이 경우에는 최선책이라 할 수 있다.
핵심을 벗어나지 말고 생각을 정리해 발언하라: 회의를 하면서 발언하는 동안 점점 핵심에서 벗어나 결국에는 스스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는 사람이 있다. 또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배려하는 동안에 궤도가 확실하지 않아 공황 상태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부장은 찬성이고, 과장은 반대이니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이것저것 생각하는 동안에 의견을 밝히라고 요구받으면 각각의 견해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경우에는 발언해달라는 요구가 있어도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생각이 정리되면 발언하겠습니다” 하고 분명하게 전하는 편이 좋다. 발언 요구에 바로 응할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만,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 자기 의견을 굳히지 못한 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의미가 분명하지 못한 발언이 되기 십상이다. 결국은 머리 회전이 둔한 사람으로 찍히고 만다.
만약 누군가가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발언을 할 때 특히 추상적인 낱말이나 표현을 쓰면 사회자는, “그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고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것이 본론과 관계가 없거나 이야기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만 할 때는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를 듣겠으니 이번에는 아까 나온 건에 관한 의견을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정리하면 좋을 것이다.
비판 정신을 발휘하여 논의를 확실하게 하라: 걸핏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비판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비판 없이는 건전한 회의를 운영할 수 없다. 특히 일본 사람들은 예스인지 노인지 분명히 하지 않고 모호하게 넘어가버리는 경향이 있다. 회의에서도 의견의 대립이 생기면 어정쩡한 타협안을 내놓아 일단 그 자리를 모면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나중에 불필요한 문제를 초래하지 않도록 회의 단계에서 서로 왕성한 비판 정신을 발휘해서 논의를 확실하게 다 해두어야 한다. 특정 안에 반대한다고 주장할 거라면 당연히 반대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대안을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특정 안을 대신할, 그 이상으로 훌륭한 안을 발표하지 않으면 회의는 비생산적인, 단순히 부정을 위한 부정의 장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특정 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물으면 근거도 대안도 없이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이 있으면 회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회의하는 내내, 자신의 불쾌한 심중을 주위 사람들한테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대놓고 골을 부린다. 반대하는 이유도 대책도 내놓지 않고 오로지 반대를 부르짖는 상사한테는 사회자가 먼저 용기를 내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본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거의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입을 굳게 다물기로 작정한 듯한 상사에게는 “이 안의 이 부분에 관해서는 부내에서 상당히 논의해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만……” 하고 안의 일부분을 집어내어 찬성인지 반대인지 확인해나간다. 일종의 소거법(消去法)으로 상사의 의사를 확인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적극적이지 않을 때는 그 회의는 바로 중단하고 후일 다시 속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적절하고 절묘한 비유를 상황에 맞게 활용하라: 발언하는 동안 마구 비유를 끌어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비유가 될 수 없는 비유를 하면, 현명해 보이기는커녕 머리가 나쁜 것을 스스로 까발려 망신을 살뿐이다. 사실 비유를 잘 활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대개가 무엇 때문에 비유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것뿐이다. 또 ‘예를 들면’ 하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비유하는 이야기에 역점을 두게 되어, 어느 샌가 결론을 놓치고 마는 일이 다반사다. 부적절한 비유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은 다른 애물단지들에 비하면 회의에 끼치는 실질적인 피해가 작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으로 이야기가 길어지고, 결과적으로 회의 시간이 길어진다. 역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무분별한 사람들이다.
그래도 꼭 비유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처음부터 결론을 먼저 말하고 나서 비유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 비유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참가하는 회의에서는 사회자가 각 구성원이 발언하는 시간을 제한해서 초과했을 때는 “3분이 지났습니다. 발언을 정리해주십시오” 하고 재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회의를 길어지지 않고 효율적으로 이끄는 아주 편리한 방법이다. ‘요컨대’라고 해놓고 조금도 이야기를 정리하지 않는 버릇을 고치게 하려면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주는 것이 좋다. 상대가 상사여서 아무래도 지적하기 어려울 때는 ‘반대로’, ‘다시 말하면’ 하고 상사의 입버릇을 흉내내어 발언해서 본인이 자각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므로, 상대의 입버릇이 아주 심할 때를 제외하고 실행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않으면 참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다.
Part 3 비생산적 회의에서 탈출하기 프로젝트
비평과 분석은 종종 문제의식을 흐리게 한다: 과거의 실패를 분석해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거듭하지 않고 미래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한 회의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런 회의는 자칫 방법이 잘못되면 어처구니없이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위험을 품고 있다. 그 예를 한 가지 들면, 잘못을 분석하는 것이 단순히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으로 끝날 뿐 미래로 이어지는 건설적인 제안이 되지 않는 경우다. 잘못을 분석하는 문서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의하는 동안에 어느 샌가 잘못을 남의 일로 여겨 비평가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을 자신의 일로 인식하지 않는 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지 않는다.
과거의 실패와 문제를 놓고 회의하는 이상,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잘못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잊으면 결실 있는 회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 회의에서는 모처럼 날카롭게 분석하고 열기를 띤 비평을 했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만 통할 뿐, 전혀 남는 것도 없이 내용 없는 회의로 끝이 난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여럿이서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저 집단 괴롭힘이 될 뿐이다. 비판당하는 쪽으로서는 갑자기 의기소침하고 의욕이 확 꺾이고 만다. 자기비판이라면 좋지만 남을 비판하는 회의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회의에서 비평과 분석에 열중하면 어느덧 잘못과 문제를 통해 배워 앞으로 일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게끔 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소홀해진다. 비평과 분석도 어느 정도 필요한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의의 발단이지 본제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회의 전체에서 비평은 길어도 1/5에 그치게 한다. 그런 다음에는 논의를 구체화해야 한다. 잘못이나 문제를 생각하는 회의는 누군가에게 원인을 떠넘겨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마음에 새겨두기 바란다.
우두머리의 방침만 따르는 회의는 경영에 타격을 준다: 회의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어둡거나 답답한 공기가 감도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분위기에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으며, 발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의논은 정체한다. 이런 회의가 이루어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회의하는 내내 절대 권력을 가진 ‘우두머리’가 은연중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참가자들은 우두머리가 의안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우두머리의 의향을 살피느라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에 빠진다. 용기 있는 누군가가 도화선에 불을 당겨주기를 바라고, 거기에 대한 그의 표정과 발언에서 우두머리의 의사를 읽어내려고 한다. 이런 부담 아래 놓이면 누구라도 기분이 어두워지고 말수도 적어진다. 사회자고 참가자고 할 것 없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스맨이 된다. 마치 고문 같은 비생산적 회의의 전형이다.
우두머리가 압도적인 지배력을 발휘하는 회의에서 분위기를 호전할 수 있는 것은 우두머리 본인뿐이다. 다른 참가자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우두머리가 달라지는 것밖에 사태를 개선할 방법이 없다. 가능하면 우두머리는 회의에 참가하지 말고 부하한테 맡겨야 한다. 그런데도 굳이 참석해야겠다 싶은 경우에는 전혀 회의에 개입하지 않는 참관인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주최자로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회의를 활발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두머리의 방침에만 추종하는 회의만 계속해서는 결국 착실하게 경영에 타격을 입히는 꼴이 되고 만다. 회의 도중에 분위기가 나빠지면 사회자는 휴식시간을 갖거나 장소를 바꾸는 등 분위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본다. 결국 참가자는 전원이 ‘자신이 주역’이라는 생각으로 회의에 임해야 한다. 침체한 분위기를 주최자나 사회자한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고양된 분위기는 종종 얄팍한 결론을 이끌기도 한다: 어두운 분위기에서는 뛰어난 결론을 얻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밝기만 하면 좋은 것은 아니다. 회의 분위기가 몹시 낙관적이어서 참가자가 이상하게 들떠 있는 듯하면 조금 주의하는 것이 좋다. 분위기가 고양된 회의에서는 종종 얄팍한 결론이 나오는 일이 많다. 구체성이 부족하거나 안이하게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결론을 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개발부가 그 분야에서는 실로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자. 그러나 제품화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회사가 그에 견딜 만한 체력을 갖추었으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획기적이라도 제품화는 무리다. 즉, 좁은 집단 안에서 입을 모아 칭찬하는 ‘뛰어난 결론’은 단순히 이상론, 실현성 없는 꿈같은 이야기로 빠지고 마는 일이 적지 않다.
실현하기 위한 안건을 협의할 때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넓은 사람이나 위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참가하게 해야 한다.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직종끼리 뭉치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고 실현성이 부족한 결정을 내리기 십상이다. ‘사소한 흠을 잡는 데 열을 올리는 유형’의 사람을 과감하게 구성원에 포함해보는 것도 좋다. 이런 사람은 작은 부분에 하나하나 의심을 품고 제동을 걸어 다른 참가자들은 짜증스러워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실현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종의 검사 시약이 되어줄 것이다. 정해진 내용은 ‘언제까지 실행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정으로 해나가겠다’는 내용을 확실하게 일정과 절차를 확인해둔다. 실행 계획을 정하지 않고 그저 결론을 이끌어내기만 해서는 아무래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반론이 나오더라도 감정적으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 의문과 반대 의견이 나왔을 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면 그 안에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달성 불가능한 꿈같은 목표를 내걸지 말라: 높은 이상을 내걸고 그 실현을 위해 매진하는 것은 의미 있는 회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닿을 수 없는, 꿈같은 목표를 내걸면 오히려 사원의 사기를 꺾고 만다. 영업 회의에서 통상 한 달에 고작 몇 명 정도밖에 신규 고객을 늘리지 못하는데, “이 달에는 한 사람당 50명씩 신규 고객을 늘립시다”라고 제안해보았자 무리이다. 그런데 참가자가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판매 전망을 발표할 때 “그런 무기력한 의견은 듣고 싶지 않아!” 하고 일축하는 경영자가 있다. 이상을 높게 가지라는 둥,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둥,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둥, 기합이나 근성을 끌어들여 설복하려 한다.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 목표를 무리하게 강요하는 사람은 ‘사원의 의욕을 높이고 싶다’는 마음일 때가 많다. 어쩌면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상만큼은 높이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수준의 목표가 아니면 오히려 의욕을 떨어뜨린다. 또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강요한다고 해도 상대는 ‘높은 이상’을 느끼기는커녕 ‘거대한 벽’에 짓눌리고 말 것이다. 경영자의 꿈과 현실적인 목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강요당하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반대하기가 어렵다. 그런 다음에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실제로 야구의 투수는 퍼펙트게임을 가장 높은 목표로 설정한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노히트노런, 안타를 맞으면 다음으로 완봉을 목표로 역투한다. 점수를 내주면 최소 실점으로 막으려고 한다. 어쨌든 자기편이 승리하는 것, 그것이 최소 수준의 목표다. 이처럼 다양한 국면에서 나름대로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최소한의 목표만큼은 어떻게든 사수하면 된다. 실제로 완전시합을 달성한 투수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달성을 목표로 힘을 쏟는 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자신을 그렇게 이해시키고 격려하면 좋을 것이다.
Part 4 직장회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프로젝트
감정적 발언을 계기로 벌어지는 격론을 수습하라: 회의에서는 종종 격론이 벌어진다.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해 의안이 훌륭한 안으로 다듬어지는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의견이 완전히 두 개로 갈려 수습이 불가능해지는 일도 있다. 한 의견에 맞서 다른 한 의견을 고집하는 집단이 있어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평행선을 걷고 그저 답답한 시간이 지나간다. 격론 끝에 ‘당신이 문제’라는 등 노골적으로 개인을 공격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종종 참석하지 않은 사람을 제물로 삼아 비난하는 일도 있다. 결국 쌓아두었던 울분이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향하고 만다. 그런 때일수록 사회자가 그 자리를 책임지고 정리하여 의논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대립하는 두 안 가운데 어느 쪽이 우위인지 객관적으로 참가자에게 보여주고, 감정적인 발언을 삼가도록 해 참가자들 사이의 서먹한 분위기를 풀고 잘못된 방향으로 어긋나버린 의논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보통 의견 대립이 생겨서 격론이 벌어지면 쌍방이 결론이 나지 않는 입씨름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논점이 불명확해져 무엇이 문제였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사회자가 해야 할 일은 쌍방의 의견의 핵심을 분명히 해서 두 가지 안의 대립하는 점을 알기 쉽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논점을 바로 잡으면 의논의 흐름이 정리된다. 또 대립하는 의견이라고 해도 얼마간의 공통점은 있을 것이다. 공통부분을 찾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두 가지 의견의 장점과 단점을 냉정하게 생각해나간다. 그러면 다른 참가자도 의견을 내기 쉬워지고, 그러는 동안에 두 가지 의견 가운데 어느 것을 지지할 것인지 회의장의 방향성이 서서히 보일 것이다. 또 두 가지 의견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할 적기(適期)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너무 늦어지면 참가자에게 감정적인 응어리가 남고 의논이 무르익기 전에 흐름을 정해버리면 참가자는 허탕을 쳤다고 생각하게 된다. 회의의 동향을 지켜보고 적절한 시기를 가늠하기 바란다. 우유부단은 금물이다.
회의에서 사회자는 선생님이 아님을 명심하라: 회의에서 사회자는 객관적으로 매사를 파악해 공평하게 의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대놓고 편을 드는 사회자가 적지 않다. 그런 일은 과장과 부장 등, 그 부서의 지위가 높은 사람이 부하를 모아놓고 하는 회의에서 사회를 맡았을 때 생긴다. 사회자를 학교 선생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업무상의 회의를 선생이 학생에게 의견을 말하게 하고서 그것을 판정하고 평가하는 자리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온 발언의 적극성에 따라서 그 사람을 평가할 작정이다. 마음에 드는 부하의 의견은 적극적으로 감싸고돌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의견은 무조건 부정하는 사회자도 있다.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한테 회의장에서 나가라고 호통 치는 일도 있다. 그래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하고, 그럴 때마다 무의미한 회의가 길어질 뿐이다.
감정적이거나 특정인을 일방적으로 감싸고도는 사회자는 진행이라는 중요한 소임을 맡지 않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의 기술로서는 ‘사회자보다 중요한 위치’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부장님이 중간자인 사회를 맡으면 매우 중요한 안건에서 의견이 갈릴 경우에 재정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부장님께서는 사회자가 절대 할 수 없는 ‘지휘자’가 되어주시고 사회는 부하한테 맡겨주십시오. 꼭 필요할 때 절대 권위를 가진 한마디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는 식으로 넌지시 다른 위치로 옮기라고 부추긴다. 상대가 독재자 사장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사회를 계속 맡겠다고 고집하면 이제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나이를 먹어 둥글둥글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정도밖에 방법이 없을 것이다.
회의가 끝난 후에는 반드시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거의 모든 회의는 이후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안심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귀찮은 업무 따위는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인지 전혀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주로 회의 중에 의논이 불충분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태다. 회의에서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할지를 확실하게 정해두어야 한다. ‘무엇을 할지’는 결정했는데, 그 책임자와 기일이 모호하면 결국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업무 내용, 책임자(부서), 기일은 절대적인 세 가지 요소다. 회의에서 정한 실시 항목을 점검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주최자의 임무다. 또 회의 중에 진행 점검을 맡을 사람을 정해 두는 일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를 담당하는 사람이 분명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을 각 책임자에게 전함과 동시에 필요한 경우에는 독려한다.
점검 책임을 맡은 사람은 아무리 업무라고 해도 감정적으로 죄어쳐서는 안 된다. 당하는 사람은 오히려 반발해서 의욕을 잃고 만다. 시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는 각 책임자에게 연락해서 기일 일주일 전이라고 전한다. 그때 다른 관련 부서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잘 마무리해줄 것을 당부한다. 쓸데없는 설명이나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무적인 연락으로서 전한다. 이렇게 하면 상대도 주위의 진척 상황을 알고 늦어지지 않게 하려고 한다. 또 고질적으로 늦어진다 싶으면 회의 자리에서 벌칙 규정을 정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늦어지면 문책을 당하거나 벌을 받는 강박관념을 심어주기보다는 하는 만큼 보상받는다는 긍정적인 발상이 의욕을 높인다. 기일 내에 업무를 마친 부서에는 특정한 포상을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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