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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재테크, 복리

by 홍승환 2007. 4. 20.

 

마법의 재테크 복리

 

 

만남

 

그날 오후 내내 짜증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건물주는 임대기간이 아직 남아 있는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하고, 대출 신청을 했던 은행에서는 승인 거부 전화를 걸어왔다. 날씨도 흐리고 마음도 흐려 나는 일부러 블랙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내 처지가 블랙커피를 마신 입맛처럼 쓴맛을 내고 있었다. 재테크 카페라도 가입해 둘 걸, 자존심만 내세우면서 배곯는 양반이 딱 내 모습이 아닌가? 그동안 괜한 곳에 돈을 너무 당겨 써버렸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이면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친구 강호섭이었다. 호섭이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내내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이었다.

 

내가 호섭이에게 이면지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는 그의 독특한 생활습관 때문이었다. 그는  자주 복사실에서 나오는 이면지를 얻어다가 노트를 만들어 쓰고는 했다. 또한 학창시절 내내 늘 후줄근한 옷만 입고 다녀서 내가 핀잔을 주곤 했었다. 그런데 남몰래 어려운 동창들을 돕는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고, 그의 집이 큰 부자라는 소문도 들렸다. 어쨌든 나는 그를 이면지라고 불렀다. 이면지가 그날 내게 전화를 한 것은 특별한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할머니가 재단을 세우는 일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셨기 때문에 어려운 말을 쓰는 변호사와 직접 접촉하는 것을 싫어하신다고 했다. 나는 작가이기도 한 데다가 사법시법을 준비한 경력도 있기 때문에 변호사가 하는 말을 할머니에게 쉽게 이해시키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내가 이면지를 따라간 곳은 시장의 한 모퉁이였다. 시장 입구 모퉁이에 있는 세 평 남짓한 땅바닥에서 이면지의 할머니는 콩나물과 두부를 팔고 계셨다. 얼굴에 산맥처럼 자리 잡은 주름들이 할머니의 고생을 말해 주고 있었다. 사실 나는 할머니를 보고 적잖게 실망했다. 재단을 만든다고 해서 최소한 1억 원은 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장 한 귀퉁이에서 콩나물을 파시는 할머니가 수억 원을 모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통장을 보고 하마터면 커피를 쏟을 뻔하였다. , 이게 얼마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십억 그리고 …. 나는 놀란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그리고 할머니의 주름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돈을 어떻게 모으셨는지가 궁금했다. 할머니는 내 생각을 눈치 채셨는지, 그냥 오래 살다 보니 그렇게 돈이 모였어. 라고 말씀하셨다.

 

이면지의 할머니는 당신처럼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한 한을 평생 품고 살아야 할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줄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잘 아는 변호사를 통해서 재단 설립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면지는 내게 재단 이사장을 맡아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네가 우리 할머니와 함께 한 달 동안 콩나물 장사를 해야 해. 어쨌든 나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사회적인 지위도 얻고, 매달 이사장 월급도 나올 터였다. 나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이면지의 제안을 수락했다.

 

 

 

원두커피

 

처음으로 콩나물 장사를 배우러 나간 날, 할머니가 나를 보고 하신 첫 말씀은 옷을 갈아입으라는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최대한 낡은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여기서 장사하려면 여기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해.라고 하시며 시장 한쪽에 가서 5천 원짜리 면티셔츠와 면바지를 사 오셨다. 내가 옷을 갈아입자 할머니는 콩나물 통 하나를 따로 내주시면서, 시장 반대편 골목에 가서 팔고 오라고 하셨다. 나는 콩나물 통이 그렇게 무거운지 처음 알았다. 플라스틱 통도 있을 텐데 할머니는 굳이 나무판자로 엮은 통을 쓰고 계셨다.

 

콩나물 좀 사세요. 모기 소리만 하게 겨우 한마디 하고 있을 무렵,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자기 자리라며 시비를 걸었다. 시장에 자기 자리가 어딨냐며 내가 따지자 아주머니는 세상물정 모른다며 더욱 큰 소리를 쳤다. 결국 자리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해가 질 무렵에서야 겨우 콩나물 한 통을 팔 수 있었다. 할머니께 빈 콩나물 통을 가져다드리자 할머니는 내일 새벽에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하루 종일 쫓겨 다니느라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 나는 할머니께 오늘은 첫날이니 좀 봐 주세요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바람이 불고 비가 올 것 같다고 해서 장사를 미루면 되겠나? 게으른 사람이 늘 상황 탓을 하는 법이네.라고 말씀하시며, 내일 새벽에 오면 할머니가 돈을 번 비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셨다.

 

 

정성

 

새벽 5시 경에 할머니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는 지하창고가 있는 집 모퉁이로 나를 데려가셨다. 축축한 기운이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어두운 전등불 아래 항아리로 만든 콩나물시루가 가득하였다. 할머니는 항아리로 만든 빈 콩나물시루들을 씻어내셨다. 그리고 짚을 시루 밑바닥에 깔더니 어디선가 한 소쿠리 담아온 재를 지푸라기 위에 덮으셨다. 그 위에 콩을 골고루 뿌리시더니 다시 재를 깔고 또 콩을 뿌리고, 이런 식으로 할머니는 재와 콩을 다섯 층 정도 쌓으셨다. 할머니는 시골에 살 때부터 써온 방법인데, 이렇게 해야 콩나물이 고소하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실 때마다 아이고, 내 새끼들. 하루 동안 몰라보게 자랐네 라며 연신 아이들 대하듯이 하셨다. 할머니는 탐스런 포도송이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 년 내내 정성을 기울여 포도나무를 돌봐야 하는 것처럼 콩나물도 정성을 기울여야 잘 자란다고 하셨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다 자신만의 포도나무가 있다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콩나물에게 쏟는 정성만큼, 내 사업과 직원들에게 정성을 쏟아보았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사업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았는가? 직원들에 대해서는? 정성은 할머니가 돈을 번 비법 중에 하나인 듯이 보였다. 그런데, 사실 정성을 쏟으라는 말은 너무도 상식적인 원칙이 아닌가? 이것이 무슨 비법이 될 수 있을까?

 

 

지름길

 

나는 궁금증을 숨기지 않고 할머니께 바로 여쭈었다.

할머니, 정성을 쏟으라는 말은 너무 상식적인 말씀 아닌가요?

그래? 그게 왜 상식적이지?

모든 사람들이 아는 너무 뻔한 이야기잖아요.

너무 뻔한 이야기라. 사람들은 너무 뻔한 길을 놔두고 꾀를 부리지.

꾀를 내야 이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할머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되물으셨다.

정직이 뭐라고 생각하나?

정직이란 바르고 곧은 것 아닌가요?

그러면 굽고 곱은 길을 가야 빠른가, 아니면 곧고 바른 길을 가야 빨리 갈 수 있나?

그거야 당연히 곧고 바른 길을 따라가야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겠죠.

그런데 왜 곧고 바른 길을 놔두고, 굳이 굽고 곱은 길로 가려 하지? 정성을 기울이라는 말은 바로 곧고 바른 길을 가라는 것이네

 

나는 콩나물시루로 머리를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누구나 다 잘 아는 정직한 원칙들. 이 원칙들이 너무 상식적이어서 그 길로 가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던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서,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내 배워왔던 도덕적인 기준들, 상식적인 원칙들이야말로 곧고 바른 길을 가르쳐주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왜 늘 무엇인가 영악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을까? 할머니는 정성을 쏟는다, 너무도 당연한 상식을 가르쳐 주셨다.

 

 

목돈의 힘

 

그날 아침에도 할머니는 분주히 장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어서어서 서둘러. 할머니가 독촉하는 사이 회사 직원이 자금문제가 다급하다며 연락을 해왔다. 무슨 수가 생기겠지 회사일은 저녁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은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생각보다는 시장에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할머니는 오후가 되어야 주부들이 저녁 반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시장에 나온다고 했다. 세시가 지나자 할머니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저녁이 되어갈 무렵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콩나물 다섯 통이 다 팔렸다. 이제 정리하고 들어갈까요? 내가 말하자, 할머니는 무슨 소리야?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 하셨다.

 

할머니는 점심때 자금문제로 고민하는 나를 보고 우리 회사에 투자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투자를 빌미로 나를 너무 구박하시는 것 같아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을 눈치 채셨는지 할머니가 말씀을 이으셨다. 내게 부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지금 수레를 끌고 가서 콩나물 다섯 통을 더 실어와. 그러면 부자 되는 법을 한 가지 더 가르쳐주지. 나는 콩나물을 더 실어 와서 장을 닫는 시간까지 남김없이 다 팔았다. 그러나 정작 번 돈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할머니가 콩나물을 싸게 파시기도 했지만, 콩나물 값을 깎으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500원어치를 사면서 100원을 깎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푼돈 100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할머니, 사람들이 너무 깎는 것 아닌가요?

내 말을 들은 할머니가 또 핀잔을 주셨다.

그래서 자네는 아직 멀었다는 거야. 내가 부자 되는 법을 또 하나 가르쳐준다고 했지? 지금 자네는 한 수 배운 걸세.

할머니는 지금 내 주머니에 잔돈이 얼마나 있냐고 물으셨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 500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질문하셨다. 생각해보니 버스요금도 안되고, 튀김이나 핫도그 하나 정도 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500원으로 해볼 만한 일을 찾기는 힘들 걸세. 하지만 500원을 열 번만 모아 5,000원이 되면 한 끼를 충분히 먹을 수 있고, 백 번 만 모아서 5만원이 되면 옷 한 벌을 살 수 있지.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사람들이 장을 보는 동안에 100원씩 10번을 깎는다면 1,000원을 아끼게 되고, 또 1년에 백 번 정도 장을 본다고 하면 10만원을 모으게 되는 셈이었다.  푼돈 자체로서는 별 힘이 없지만, 목돈의 가치는 훨씬 커지는 것이다. 푼돈 500원을 천 번에 걸쳐서 쓰는 것과, 목돈 50만원을 한 번에 쓰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500원이라면 기껏해야 핫도그 하나를 사 먹을 수 있지만, 50만 원이라면 손님을 모시고 최고급 호텔에서 근사한 정찬을 대접할 수 있는 돈이었다. 핫도그 1,000개를 사주면서 협상을 하기는 힘들어도, 최고급 정찬 한 번으로 잘 대접받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목돈의 중요성을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밀스런 글귀

 

그날은 너무도 피곤하여 할머니의 집에서 자기로 하였다. 게다가 할머니의 투자 약속을 받은 터라 그것을 확실히 다짐받고 싶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바로 잠을 청하셨다. 나도 할 수 없이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면지의 방으로 갔다. 이면지는 샤워를 하는지 방에 없었다. 정결하게 잘 정돈된 방 한쪽에 붉은 글씨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1. 공간은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낸다.  2. 시간은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낸다. 이면지의 사고방식만큼이나 독특한 문장이었다. 글귀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보니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과 비슷해 보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면지에게 벽에 붙여 놓은 글귀가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이면지는 오늘 할머니한테서 배운 목돈의 가치를 이 글귀를 통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면지의 설명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질량-에너지 등가 공식인 E=mc²'을 조금 바꾸어보면, 이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공간 크기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공간이라는 것이 꼭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인 조직, 돈이 모인 목돈도 다 공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직이 크면 클수록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내고, 목돈도 모이면 모일수록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낸다고 했다. 그런 현상 중의 하나로 란체스터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무기성능이 같은 전투기들끼리 싸우면, 전투기 숫자가 많은 쪽이 제곱의 비율로 살아남는다고 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발견되었고, 그 후 수학적으로도 검증되었다고 한다.

 

이면지는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설명을 계속했다. 어떤 상품 시장의 50%를 점유하는 회사가 있고, 10%를 차지하는 두 회사가 있을 때, 두 회사의 힘은 5대 1이 아니라 25대1로 발휘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자산 가치는 그곳에 가입한 회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돈도 마찬가지로 10억 원을 가진 사람과 1억 원을 가진 사람의 힘은 10대 1이 아니라 100대 1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백만 원은 별 의미가 없지만, 4,000만 인구가 다 백만 원씩 저축하면 40조 원이 되고, 이것을 현재 환율로 따지면 약400억 달러라는 큰 자본이 된다는 것이다. 이면지의 말은 한마디로, 뭉치면 훨씬 더 큰 힘을 낸다는 것이었다.

 

이면지는 마지막으로 농부의 비유를 들었다. 농부는 씨앗을 베고 누운 채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씨앗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씨앗은 다음해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이고 가능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목돈은 종자돈이고, 종자돈은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했다. 푼돈을 어딘가에 투자하기는 어렵지만, 목돈은 투자할 곳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목돈의 힘은 바로 기회라는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 군중들이 모인 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듯이, 회원이 많은 인터넷 카페에 더 많은 회원이 모이듯이, 목돈이 있는 곳에 돈이 더 달라붙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마치 중력의 법칙과 비슷하였다. 물질이 뭉친 곳에 중력이 생기고, 중력이 또 다른 물질들을 끌어와 뭉쳐내는 것이었다.

 

 

푼돈

 

다음날 할머니는 내게 새로 만든 통장과 전날 번 돈 5만 원을 쥐어주셨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동안 할머니 대신 내게 콩나물을 팔아 저금하라고 하셨다. 어제같이 잘 팔리는 날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기껏해야 2만원에서 4만 원 벌이가 고작이라는 점도 명심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부터 할머니를 대신해서 콩나물을 열심히 팔고 저금을 해나갔다. 할머니는 하루도 어김없이 시장 안에 있는 새마을금고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전날 번 돈은 반드시 그 다음날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저축하게 하셨다. 비록 내 돈은 아니었지만 매일 돈이 모인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날도 전날 번 돈을 저금하기 위해 새마을금고에서 순번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포도나무 비유로 또 가르침을 주셨다. 포도 한 송이로는 술을 담글 수 없지만, 포도송이를 여러 송이 모으면 술을 담아 묵힐 수 있다네. 나처럼 매일 버는 사람은 그날 번 돈이 포도 한 송이가 되고, 월급쟁이는 한 달에 한 번씩 포도송이 여러 개를 딸 수 있지.라는 할머니의 비유를 듣다보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얼마 남지 않은 전답을 다른 사람에게 소작하게 하셨는데, 연말이면 들어오는 소작료를 일 년이 채 가기도 전에 모두 탕진해 버리셨다. 아버지는 소작료를 받으시면 머리맡 돈 궤짝에 넣어두시고는 틈나는 대로 꺼내 써버리셨다. 아버지의 포도송이는 그렇게 썩어갔던 것이다. 통장을 들여다보았다. 하루에 고작 2만 원에서 5만 원 정도 저축되었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일백만 원 정도의 목돈이 만들어져 있었다. 

 

 

포도송이

 

할머니는 콩나물이 잘 팔리더라도 일찍 장사를 접게 하는 법이 없으셨다. 콩나물이 다 팔리면, 다시 콩나물을 가져와서 더 팔게 하셨다. 그런 날이면 단 만원이라도 더 벌 수 있었다. 부지런해지는 만큼 한 푼이라도 더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할머니께 여쭈었다.

저도 늘 끊임없이 돈을 벌었는데 겨우 먹고살 정도만 되었지, 할머니처럼 큰 부자가 되지 못했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할머니는 자신이 신고 있는 양말을 내게 보여주셨다. 양말의 여기저기에 구멍을 기운 흔적이 있었다.

아무리 아낀다고 한들 아껴야 하는 진짜 이유를 모르면 소용이 없지. 아끼는 이유를 모르고 무조건 아끼는 것은 인색한 거나 다름없어.

할머니는 내게 통장을 보여 달라고 하셨다. 지난 한 달 동안 100여만 원이 저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하루에 얼마나 번 셈이 되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평균적으로 한4만 원 정도 번 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지금 내가 타는 차가 한 달에 얼마나 돈을 먹냐고 물으셨다. 대형차이다 보니 할부금 갚는 것을 포함하면 한 달 유지비가 대략 60만 원 정도 들어갔다. 내 얘기를 들은 할머니는 내가 차 유지비로 하루에 2만 원 정도 쓰고 있으며, 식사비용으로 1만원을 쓰고 있으니 콩나물 장사로 하루에 4만 원을 벌고 있다고 해도 정작 실수익은 고작 1만 원 정도를 번 셈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말씀을 이으셨다. 내가 부자라고 해서 새 양말을 산다면, 그것은 돈을 버는 것인가 아니면 돈을 쓰는 것인가? 할머니는 절약이 돈을 버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다람쥐 쳇바퀴

 

약속된 한 달이 되자, 할머니는 그동안 모은 100만원이 내 돈이라고 하셨다. 양말도 기워 신으시는 할머니가 한 달 동안 번 돈을 아낌없이 내 것으로 만들어주시다니 놀라웠다. 할머니가 물으셨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셈인가? 나는 이 돈으로 제주도나 한 번 다녀올까 한다고 대답했다. 할머니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더니 내게 작은 단지 하나를 주시며 물을 가득 담아서 가져오라고 하셨다. 내가 단지를 가져다드리자마자, 할머니는 그것을 마당으로 던져버리셨다. 소리와 함께 단지가 산산이 깨지면서 물이 쏟아졌다. 나는 무척 놀랐다. 마당에 있던 진돗개도 놀란 모양이었다. 그놈이 내 심장을 대신해서 낑낑거렸다.

 

할머니는 내 얼굴빛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신다는 듯이 말씀을 이으셨다. 자네가 겨우 모은 목돈도 저 단지의 물처럼 한 번 깨뜨리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통장에 담긴 돈을 꺼내어 쓰는 것은 항아리를 깨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비유였다. 나는 자동차를 처음으로 사던 때가 생각났다. 대출금만으로 자동차를 구입했지만 자동차 덕분에 여자애들과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대출금을 갚기 위해 몇 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나는 그 후에도 목돈을 만들면 그것을 깨서 전자제품도 사고, 자동차 튜닝도 하고는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목돈을 모으고, 목돈이 쥐어질 때마다 기념으로 친구들에게 한턱 쏘기도 하고, 여행을 다니기도 했었다. 이런 내 모습이 딱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 인생이었던 것이다.

 

 

시간의 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럼, 그 100만원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할머니는 지난 한 달 동안 거의 매일같이 다녔던 새마을금고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매달 백만 원씩 붓는 정기적금 통장을 만들어 내게 건네셨다. 나는 할머니께 여쭈었다. 할머니, 제가 매달 백만 원씩 저금한다고 해도, 일 년이 지나야 겨우 1,200만원이 모여요. 이런 식으로 평생 모아도 강남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사기도 힘들어요. 그 돈을 가지고 차라리 당장 필요한 일에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할머니는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신 채 나를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포도주 두 병을 구입하셨다. 하나는 1년 묵힌 값싼 포도주였고, 또 하나는 30년을 묵힌 최고급 포도주였다. 나는 철저하게 절약하시는 할머니가 뜬금없이 비싼 포도주를 사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날 밤 나는 이면지에게 할머니가 포도주 두병을 사신 얘기를 했다. 그러자 이면지는 할머니가 늘 그런 식으로 비유를 통해서 가르침을 주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무슨 비유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면지는 설명 대신 벽에 걸린 글귀 중에 아직 풀이를 해주지 않은 하나의 문장을 얘기했다. 시간은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낸다. 이면지는 비유를 들어 설명을 시작했다. 10년 전에 네 수중에 천 원을 가지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니? 지금 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겠지? 전에는 400원만 가지고도 지하철을 탈 수 있었잖아. 만약, 스크루지 영감이 돈을 창고에 묻어 두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애써 모은 돈만큼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돈이 되어버렸겠지. 그것처럼 시간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거꾸로 우리가 가진 것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

 

이면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포도주 두병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이건 1년 묵은 포도주야. 맛 좀 봐. 예상대로 1년 묵은 포도주는 시큼한 맛과 쓴 맛이 감돌았다. 이번에는 30년 묵은 포도주를 맛보았다. 30년 묵은 포도주는 혀끝을 알싸하게 감도는가 싶더니, 이내 부드러운 꿀처럼 온 입안을 감싸고, 이어서 달콤한 향취가 피부 세포 하나하나로 조용히 스며드는 느낌을 주었다. 할머니는 오늘 적금한 백만 원을 한 달 묵은 포도주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한 달 동안 열심히 모은 포도 백 송이를 단지에 넣었으며, 앞으로 매달 단지를 만들어 가다보면 이처럼 좋은 포도주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포도주는 오래 묵을수록 그 값이 엄청나게 뛴다는 걸 명심하라고 하셨다.

 

이면지가 할머니 말씀의 의미를 설명했다. 할머니 말씀은 말이야. 일종의 복리 효과라는 거야. 네가 적금을 부어도 처음에는 그다지 돈이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돈이 불어나는 속도가 빨라지지. 시간은 그것의 제곱에 비례하는 힘을 낸다는 문구의 의미가 바로 그거야. 수학시간에 제곱함수에 대해서 배운 적 있지? 그때 그 그래프는 오른쪽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위로 올라갔잖아. 은행에 적금을 붓다보면 처음에는 천천히 돈이 늘어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느는 속도가 빨라진단 말이야. 할머니와 이면지의 얘기는 시간, 시간이 돈을 벌어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적금을 붓고 예금을 하는 데도 부자가 되지 못한 것은 왜일까? 가슴 한쪽에서는 또 다른 계곡 하나가 파이고 있었다.

 

 

부자 공식

 

할머니의 말씀대로 나는 매달 백만 원씩을 꼬박꼬박 저축했다. 1년이 지나자 1,200만 원의 원금과 약간의 이자가 붙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처분하면 좋을지 몰라 다시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께 통장을 보여드리자 이제 창고를 늘려야겠군.하시며 적금을 찾아서 정기예금에 넣어두라고 하셨다. 사실 목돈이 만들어지니 여기저기 쓰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 마음을 읽으려는 듯이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자네가 이 돈을 어떻게 처분하느냐에 따라 부자가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게 되네. 지난번에 포도주는 오래 묵힐수록 값어치가 올라간다고 했던 말 기억하지? 1년 된 포도주마다 다 마셔버리면, 숙성된 포도주를 가질 수가 없게 되지. 만일 지금 목돈을 깨버리면 다시 1년 동안 목돈을 모아야 하는 일이 되풀이 되겠지.

 

나는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적금을 정기예금으로 옮기기로 했다. 회사근처 은행을 찾았더니 1년 만기 정기예금의 이율이 5%였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찾아서 내 계획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뜨거운 햇빛아래를 한참 동안 걸어서 다른 은행을 찾으셨다. 그곳은 연간 이자율이 6%인 정기예금 상품이 있었다. 하지만 1%차이라고 해봐야, 원금이 1,200만원 이라면 일 년에 기껏해야 12만 원 차이밖에 없었다. 겨우 일 년에 12만원을 더 얻으려고 이렇게 먼 은행까지 찾아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이면지의 복리계산 설명을 듣고 할머니가 왜 1% 차이에 그렇게 집착을 하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이면지가 복리계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은행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이자를 계산해서 그것을 원금에 보태주는데, 다음해에는 이자까지 포함한 금액의 이자를 계산해주지. 이렇게 이자에 이자를 더해주는 것이 복리야. 복리계산 공식은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배웠잖아. 처음 예금한 돈    (1+이자율)이자계산횟수. 나는 이면지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져서 복리계산쯤은 나도 눈감고 한다.라고 대꾸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작 복리계산을 시키면 어쩌나 하는데, 이면지가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네가 1,200만원을 6%의 이율로 예금을 한다면, 몇 년 후 두 배인 2,400만원이 될까?

 

. 괜히 자존심을 내세웠나 싶었지만, 잠자코 있을 수는 없었다. 첫 해는 1,200만 원, 그 다음해는 1,200만 원에 6%의 이자를 붙여서 1,272만 원, 또 그 다음해에는 거기에 다시 6%이자를 붙여서 1,348만 원…. 하하하. 그런 식으로 어느 세월에 계산하려고? 이면지는 껄껄 웃으며 나를 바라보더니 복리계산 공식보다 더 쉬운 방법을 내놓았다. 그것은 72 법칙이라는 것인데, 72를 이자율로 나누면 예금해 둘 기간이 나오고, 72를 예금기간으로 나누면 이자율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갖고 있는 1,200만원이 2,400만 원이 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아보려면, 72를 이율에 해당하는 6으로 나누면 되었다. 즉 12년 후에 2,400만원이 되는 것이었다. 또 10년 동안 1,200만원을 두 배로 불리고 싶다면 72를 기간에 해당하는 10으로 나누어 7.2%의 이율을 받으면 되었다.

 

나는 이면지가 가르쳐준 72의 법칙에 따라서 이리저리 계산을 해보았다. 1,200만원을 6%의 이자율로 예금해두면 12년마다 원금의 두 배가 되니, 내가 은퇴할 무렵인 36년 후에는 9,200만원이 되었다. 그런데 8%의 이자를 받게 되면, 72를 8로 나누면 되니까 9년 만에 원금이 두 배가 되었고, 36년째에는 약 1억9,200만원이 되었다. 만약 12%의 이자를 받을 수만 있다면, 36년 후에는 원금의 64배인 7억 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몇 %의 이율 차이가 36년 후에는 수억 원 가까운 차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복리의 힘이었다. 계산대로라면 굳이 사업을 하지 않아도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어 보였다. 내가 놀라워하자 이면지는 세계적인 갑부들도 다 이런 복리의 원리를 사업이나 투자에 응용해서 부자가 된 것이며 할머니가 그 증인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개발독재 시기를 거친 분이셨다. 그때는 1년 이자율이 30%를 넘던 시기도 있었으니 콩나물 장사만으로도 그렇게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부자 된 비밀은 바로 복리 공식이 해법이었다. 이면지가 말한 제곱함수그래프처럼 복리 효과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해서 시간이 갈수록 엄청나게 커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은행들은 기껏해야 5% 내외의 이자를 지급한다. 더욱이 인플레이션으로 세금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40년 뒤의 10억 원이 지금의 10억 원 보다 가치가 떨어질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나는 갑자기 실망의 폭풍이 밀려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털어놓자 이면지는 차차 알게 될 거야.라는 묘한 한마디만 내뱉었다.

 

 

1%의 차이

 

그렇게 세월은 흘러 다시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매달 적금을 붓고 그것을 1년마다 찾아서 정기예금으로 돌려놓았다. 이자를 조금이라도 더 주는 은행을 찾아서 예금을 옮기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돈이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는 그동안 얼마나 모았는지를 내게 물으셨다. 그동안 나는 원금 3,600만 원하고 이자를 합해서 한 4,200만 원을 모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게 앞으로 7년만 더 기다려보라고 하시며, 채 묵지도 않은 포도주 단지를 열어보면 포도주만 버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한 2년 전에 이면지와 함께 그려보았던 내 복리 그래프가 떠올랐다. 그 그래프를 잘 보면 한 10년 정도까지는 곡선이 천천히 높아지다가 그 이후에는 제곱함수의 그래프처럼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할머니가 포도주를 10년 이상은 묵혀야 한다고 말씀하신 의미가 바로 그것이었다. 포도나무가 심은 순서에 따라 자라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열매를 제공하듯이, 예금은 기간이 짧기 때문에 미처 복리효과를 보이지 않지만 미래의 수익을 제공하는 포도나무였던 것이다. 부자들이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통장을 만들게 하고 금융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바로 시간의 힘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진정한 부는 돈으로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자가 되는 법에 관한 지식으로 대물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식의 핵심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승리

 

시간의 제곱에 비례하는 복리공식을 알게 되면서 나는 슬슬 꾀가 나기 시작했다. 더 자주 이자를 붙여주는 방법만 있다면 더 빨리 돈이 불어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투자를 해보면 어떨까? 선물이나 옵션 같은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어떨까? 사실 나는 주식투자로 손해를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 내가 산 주식은 대체로 오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가끔 종목을 잘못 골랐고, 그럴 때면 크게 잃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나는 확실한 수익을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은행에 예금하는 것보다는 주식투자를 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생각을 이면지에게 말해 보았다. 이면지는 전문가들도 손해를 보는 곳이 주식시장이라고 했다. 주식은 몇 년 동안 잘 벌다가도, 한 번 크게 손해를 보면 그만큼 시간이 가져다주는 힘을 소모해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면지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까지 비유로 들며 시간의 중요성을 거듭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주식투자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내가 의문점을 제기하자 이면지가 다시 설명했다. 흔히 주식차트를 보고 투자를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술적 분석을 통해 주식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손절매에 능했어. 즉 이들은 주식투자를 돈 벌기 게임이 아니라, 돈 지키기 게임이라고 본 거지. 존 템플턴, 피터 린치, 워렌 버핏과 같은 사람들은 기본적 분석에 의한 투자, 즉 가치투자를 한 대표적 부자들이지. 다시 말해서 회사의 안정성이나 성장가능성과 같은 내재 가치를 보고, 그 가치보다 쌀 때 주식을 사서, 중장기적으로 주식을 보유하는 방식을 취했지. 이들은 주식 가격이 꾸준히 오를 수 있는 기업이라는 확신이 들 때만 주식을 사고 주가가 내리면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주식을 팔아버렸지. 즉 원금을 보전하려 한 거지.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이나 또는 어느 한두 종목에서 큰돈을 벌게 되는 때가 오게 되고, 그것으로 손실을 보상받고 이익을 냈지.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투자를 시작한지 40여 년 만에 수백억 달러의 재산가가 된 워렌 버핏과 같은 사람의 투자 철칙이 원금을 보존한다는 거였다니, 가치투자자의 투자방식은 포도주 단지를 만들어 오래 묵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할머니와 나는 은행에 그 단지를 보관한 거고, 가치투자자는 주식회사에 그 단지를 보관한 것이 다를 뿐이었다. 다만 양쪽 다 복리 공식에 나타난 원리를 따른다는 점이 똑같았다. 즉 포도주 단지를 만든 후에 그것을 열어보지 않고 그냥 진득하게 참고 기다린 것이다. 결국 안정과 안목이 문제였다.

 

 

시간 게임

 

부자들은 대부분 인내심과 성실성, 그리고 투자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오래 안정적으로 재투자한 사람들이었다. 모두 복리 공식을 실천하면서, 시간의 힘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할머니가 그 비싼 30년산 포도주를 구입하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시간의 힘을 알려주려고 하셨던 것이다. 언젠가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는 꾀를 부린 사람치고, 오래 부자로 남은 사람이 드물다는 거야. 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꾀를 부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혹 돈을 모으게 되더라도 그 돈은 쉽게 날아가 버리지. 반면에 거북이나 황소처럼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끝까지 부자로 남았어. 할머니의 말씀처럼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정직한 원칙들, 너무도 상식적으로 보이는 이 원칙들이 사실은 부자가 되는 진짜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이면지는 내게 리치가 아닌 웰시가 되라고 말했다. 빨리 부자가 되어 잠시 리치(rich)로 지내려 하지 말고, 대신에 곧고 바른 길로 걸어가서 오랫동안 웰시(wealthy)로 지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가르침과 이면지의 해설을 정리해 투자전략 지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서 적금으로 목돈을 만들고, 그 목돈을 찾아 한 푼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예금에 넣어두는 한편, 투자 상품이나 투자방식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안목이 생긴 후에는 예금에 일부를 투자하여 안정성을 확보하고, 예금보다 더 높은 수익을 내주는 다양한 투자 상품에도 나눠서 투자하였다. 또한 할머니가 맡겨주신 재단과 사업체도 정직한 원칙에 따라서 운영하였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고 성과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할머니의 말씀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번영하였다. 나는 사업체에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재단에 기부하고, 또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방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힘써오고 있다.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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