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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한 편

비가 와도 젖은 자는 _ 오규원

by 홍승환 2012. 7. 30.

 

비가 와도 젖은 자는

 

                                                      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 2012년 7월 30일 월요일입니다.

  무더위 속의 소나기가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아침입니다.

  한 주의 시작 시원하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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