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 전망 2009
1. 세계 경제
국제자본 흐름의 변화와 자산 디플레이션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대형 금융기관들은 모기지론 관련 자산 등에서 큰 손실을 입었으며, 따라서 건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금융위기를 회복하기 위해 주요국 정부가 구제금융 방안을 발효했고, 이에 따라 공적자금을 통한 자본 확충이 병행될 것이다. 하지만 높은 레버리지와 향후 금융 및 경제 환경을 감안할 때 부실자산 매각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자산 및 부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과거 적극적인 신용공급과 투자를 통해 글로벌 과잉 유동성을 만들었던 선진국 금융 자본이 금융위기 해결 과정에서 반대 흐름을 통해 글로벌 유동성을 축소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자산 가격 상승을 초래한 글로벌 과잉 유동성이 정리되면서 당분간은 자산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국 등 주택가격 버블이 심각했던 지역에서 실물경기 침체와 가계부채 구조조정이 2009년에도 이어지면서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를 보일 것이다. 기업 실적 악화로 인해 주가도 빠른 회복을 보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신흥 시장에서도 자본 유입 위축으로 자산 가격 하락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전에 글로벌 유동성 유입에 의해 자산 가격 상승률이 높았던 지역일수록 자산 가격 디플레이션 위험이 클 것이다. 이에 따라 신흥시장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실물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시장 실패에 따른 국가의 개입 확대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각국 정부는 시장을 대신해 구제 금융과 유동성 공급 확대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한동안은 시장 실패를 국가 개입으로 치유하려는 케인스주의가 득세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시장 실패의 중요한 원인으로 탈규제가 거론되고 있어 시장 실패의 재발 방지를 이유로 정부의 시장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규제 방안이 마련될 전망이다. 2008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는 모든 금융시장과 금융상품, 금융기관을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는 한편, 금융시장의 건전성 및 리스크 관리 기능을 제고하고,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상황에서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등 전 세계적으로 국가의 시장 개입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중개 기능이 취약해진 금융 시장뿐만 아니라 고용 보호를 이유로 실물경제에까지 시장 개입이 확대될 전망이다. 2008년 9월 미국 정부는 민간주식회사인 패니 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했다. 그리고 민간 보험사인 AIG에 850억 달러를 투입하면서 정부 관리 대상에 포함했다. FRB는 신용이 경색된 금융시장에 500억 달러를 풀었다. 정부가 실패한 금융시장과 낙오자들의 구원자로 나선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러한 일련의 구제금융 대책을 “국가의 귀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한 것은 민영화, 자유화, 탈규제화 등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가 월가 금융자본의 탐욕과 도덕적 해이로 인한 시장 실패라는 진단이 나오면서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앵글로색슨 자본주의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따라서 영미식 금융자본주의를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시장규제와 국가 기능의 강화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세계 교역 및 투자부진과 보호주의 강화
세계 경기 둔화는 통상 질서 혼란과 함께 세계 교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세계 전체 수출증가율은 2009년 4.4%로 예상되는데, 이는 2008년 5.3%에 비해 둔화된 것이다. 개도국 수출증가율은 2008년보다 약간 더 높아지지만 선진국 수출증가율은 4.3%에서 2.6%로 대폭 둔화될 것이다. 수입에서는 선진국의 수입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선진국의 수출증가율이 수입증가율보다 더 높다는 점에서 2009년 수출입에서 신흥 경제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세계 전체 수출액은 17.5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2008년 16.9조 달러에 비해 4.2% 증가한 것으로 2008년 22.6% 증가에 비해 대폭 둔화된 것이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선진국 공조가 본격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정책이 시행되고 있고 이는 국제 금융의 유동성을 확대할 것이다. 그러나 실물경기가 단기간에 반등하지 않을 것이고, 세계 증권시장도 당분간 상승 추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아서 세계의 M&A 시장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경기 침체로 M&A 물량은 많아지겠지만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 M&A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공장 건설형 투자(Green Field Investment)도 이전보다 부진해질 전망이다. 선진국의 경기가 침체하고 중국 등 브릭스의 성장성이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 불안과 해외 사업 환경 악화는 전 세계적으로 보호주의 경향을 부추길 것이다. 여기에는 2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경기 침체 자체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내수 기업들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저하시키면서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할 것이다. 둘째, 미국 민주당 정부의 출범이다. 민주당 정부는 시장 만능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통상 문제에 있어 자국 내 제조업의 목소리를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국에 대해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의 통상 마찰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이들 국가 역시 미국 상품에 대해 감시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2. 국내 경제
지속되는 소비부진, 열리지 않는 지갑
2008년 들어 급격히 위축된 소비는 2009년에도 큰 반등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금융 불안으로 인한 이자율 상승이 가계부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금융자산 및 부동산 가치의 하락 등으로 역자산효과가 발생하여 소비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9년 민간소비는 1.7%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민간 소비 회복은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히 요구되는 사항이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은 수출에 크게 의존해 왔으나 세계 경기가 둔화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수출에만 의존하는 외끌이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가 급등, 고용 부진, 금융자산 가치의 하락, 가계부채의 부담 증가 등 2008년 소비부진을 가져온 원인이 대부분 2009년에도 지속될 전망이어서 결국 본격적인 소비회복은 2009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경기 부양 및 내수 확충을 위해 많은 정책을 기획하고 있다. 2008년 11월 3일 발표한 경제난국 극복 종합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11조 원의 공공지출 확대와 3조 원의 세제지원을 통해 총 14조 원의 재정지출을 늘릴 계획이다. 여기에 세제지원 4.4조원, 추경예산 4.6조원, 국회 제출 감세안 10.3조원을 합치면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분은 GDP의 3.5%에 달하는 33조 원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정부의 재정확대 효과를 감안한다면 2009년 민간소비의 흐름은 상저하고(上底下高) 현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저조한 수출, 약해지는 성장 견인력
2008년 하반기부터 세계 경기가 동반 급락함에 따라 2009년 한국의 수출환경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가격효과도 소멸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수출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되어 3.2%에 그칠 전망이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의 경기 하강은 2009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그동안 수출 호조를 이끌던 신흥 개도국의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09년에는 신흥 개도국의 경기 둔화 폭이 선진국을 웃돌면서 한국의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01년 IT 버블 붕괴에 따라 세계 경기가 침체에 빠졌을 때 한국의 수출은 12.8%나 감소했으나, 2009년에는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로 급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및 기계 플랜트 등 주력 수출 품목의 풍부한 수주 잔량이 2009년 실적으로 잡히기 때문에 수출 급락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경제도 8% 대 연착륙이 예상되지만, 중국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펼치고 있으므로 중국 내수는 성장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 대한 수출이 호조를 보인다면 대 아세안 수출도 함께 증가하게 되어 한국은 수출 둔화 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한국의 경상 수지는 균형 수준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수출이 급감하는 반면 유가 및 원자재가격 하락과 국내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로 수입이 더 큰 폭으로 둔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가 하락은 경상수지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2009년 무역 수지는 48억 달러 흑자가 예상되며 이에 따라 상품수지도 200억 달러 내외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성적인 적자 구조의 서비스 수지도 환율 상승 및 내수 부진에 따라 적자폭이 줄어 전반적인 경상수지는 21억 달러 내외의 흑자를 보일 것이다. 이러한 경상수지 개선은 외화 유동성을 호전시켜 환율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불안정성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환율
원/달러 환율은 2008년 4/4분기부터 점진적으로 하락세를 보일 전망이다. 2008년 4/4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은 1,323원이 예상되며 2009년 연 평균 1,040원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이는 경상수지가 4/4분기에는 약 45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중국 및 일본과의 통화 스왑 규모를 40억 달러와 130억 달러에서 각각 300억 달러까지 확대하려고 노력중이다. 스왑규모가 계획대로 확대된다면 한국의 외환시장은 빠르게 안정될 것이고, 달러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달러화 강세 기대가 약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의 하락 폭도 커질 수 있다. 또한 국제 금융기관 간의 신뢰가 회복되고, 리보 금리 인하로 달러화 거래가 늘어난다면 금융위기 발생지인 미국에서 EU, 일본 등 선진국을 거쳐 궁극적으로 한국 등 신흥 시장으로의 달러 유동성 공급이 늘어날 전망이다.
2009년 원/달러 환율이 1,040원대로 하락하더라도 환율 변동성이 크게 축소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 불안은 2008년 4/4분기를 정점으로 하여 점차 해소되겠지만, 2008년 이미 시작된 세계 실물경기의 둔화가 글로벌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세계 각국의 구제금융정책에 힘입은 금융불안 완화가 주가 상승과 환율 안정에 기여하는 한편, 실물 부문 부진이 주가 하락과 환율 변동성을 부추길 것이기 때문이다.
3. 산업
세계 수요부진 속에서도 성장을 지속하는 정보통신기기 산업
2009년 정보통신기기 산업의 생산과 수출은 7.3%와 13.1% 성장할 전망이다. 통신기기는 2008년 수출이 30% 내외의 고성장을 달성했다. 2009년에는 세계 경기 침체로 수출성장률 둔화가 예상되지만 여전히 10% 후반의 고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기 부문은 2009년에도 생산 및 수출이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할 전망이다. 내수와 수입은 각각 4.8%와 18.2% 성장이 예상된다. 통신기기 내수 시장은 2008년 상반기까지는 고성장을 견인했으나, 하반기부터는 통신 서비스 업계의 긴축정책으로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2008년 한국 기업은 통신기기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실시하여 시장점유율이 증가했다. 로우엔드 시장에서는 환율효과에 힘입어 가격 경쟁을 주도하고, 하이엔드 시장에서는 경쟁사보다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전년 대비 2.7%상승)했다. 하지만 2009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성장률은 2008년에 비해 4% 감소가 예상된다. 특히 신흥 시장에서의 판매증가율은 10% 내외로 감소될 전망이다. 국내 내수 시장은 2009년에도 침체가 계속될 전망이다. 다만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매출을 늘리기 위해 망 개방을 확대하고 저렴한 데이터 통신 정액제를 확대하면서, 모바일 인터넷을 지원하는 스마트폰 판매가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내수, 수출 동시 부진이 우려되는 자동차 산업
2009년 자동차 산업의 내수 시장은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와 자산 가치 하락으로 가계의 구매 여력이 감소되면서 정체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2009년 자동차 내수 판매는 2008년 대비 -0.6%의 증가율을 보일 전망이다. 차급별로는 고유가와 신모델 출시를 배경으로 경차 판매가 호조를 보일 전망이다. 수출은 세계 경기 침체와 국내 업체의 해외 현지생산 본격화로 부진이 예상된다. 수출대수가 275만대에 머물면서 증가율이 -1.9%의 감소세를 보일 전망이다. 주력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부진이 심화되고 신흥 시장의 성장률 역시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한미 자동차산업의 경쟁과 무역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오바마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정지원과 한미 FTA 재협상 요구 등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와 업계는 변화하는 한미 자동차 산업 관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한미 FTA 협정에서 자동차 분야는 관세와 세제 등에서 미국 측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것이고, 미국차의 판매 부진이 한국의 무역장벽이나 차별적 관행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FTA가 체결되면 미국차에 조립되는 한국산 부품가격이 더욱 낮아지고 친환경 소형차에 대한 기술 협력 등이 활성화되어 미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신성장동력 본격 육성 기대
2009년에는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신성장동력 육성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정부도 2008년 9월 저탄소 녹색성장과 지속적 성장잠재력 창출을 위한 22개 “신성장동력 비전 및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신성장동력에는 기후 변화와 고령화 등 미래의 산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에너지, 환경, 바이오 등 신산업과 국내 기업의 높은 기술 역량을 활용한 수송 시스템, 뉴 IT, 융합 신산업 분야들이 포함된다. 제조업 경쟁력을 지원하기 위한 지식 서비스 분야의 사업들도 다양하게 포함되었다.
신성장동력의 면면을 보면 연관기술 및 산업의 동반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가 많아 부가가치와 고용창출 측면에서 시너지가 기대된다. 예를 들어 장기적 육성 과제인 그린카는 핵심 기술인 리튬이온 2차 전지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LED 조명은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및 IT 기술을 융합하여 신산업을 창출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신성장 동력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저하된 성장 잠재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분야의 부가가치 생산액은 2008년 116조원에서 2018년 576조원으로 증가하고, 수출액은 2008년 1,208억 달러에서 2018년 7,954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규 일자리는 2013년까지 향후 5년 동안 88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4. 기업경영
보수경영 기조의 확산, 시험대에 오른 성장전략
2009년 한국 기업은 경영 기조에서 보수경영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치솟는 환율과 유동성 문제를 겪게 된 한국 기업들이 외환위기 트라우마 증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기업은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는 것이 최고의 안전판”이란 인식을 갖게 되며 불요불급한 비용 지출과 부채 비율을 최대한 줄이고자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배당금 지급을 줄이고 시설투자액을 축소하여 현금 보유량을 2007년 하반기 이후 꾸준히 늘려가고 있다. 이러한 현금중시형 보수경영 기조는 한국 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2009년은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에 시련의 한 해가 될 것이다. 특히 환헤지 상품 키코로 인해 흑자도산 기업까지 생겨나면서 IMF 이후 최대 위기라는 공포감을 주고 있다.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은 금융권에서 이들에 대한 신규 대출 및 대출 자금 상환 연기 등 지원책을 내놓지 않아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보증기관과 기업은행을 통해 중소기업 자금 지원 금액을 2008년보다 약 20조 원 정도 늘릴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대응책은 지원이 절실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평가할 만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선지원 후대응’ 식으로 전개할 경우 자칫 지원 대상 기업의 모럴 헤저드를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국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 대다수 기업이 수비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하는 반면 일부 업종과 기업은 성장을 향한 투자 활동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나 연관 사업 부문을 흡수 합병하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장기 불황이 예고되면서 핵심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잇따르고, 대기업도 구조조정 차원에서 수익성이 불투명한 사업부문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2009년 한국 기업은 보수경영 기조라는 큰 틀 안에서 유동성 확보와 구조조정 전략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불황기 마케팅의 키워드, 알뜰과 신뢰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과거 중ㆍ저소득층 소비자들 사이에서 주로 형성되던 실속형 소비가 이제는 소득과 상관없이 나타나는 합리적 소비문화로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남녀노소 모두 신뢰할 만한 정보를 수집하고 선별하는 능력을 갖춘 데다 불황기에는 가격 대비 가치를 꼼꼼히 비교하고 기업이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을 활용하려는 알뜰형 소비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가치소비 패턴에 대비하기 위해 기업들도 절치부심하고 있다. 우선 소매 및 유통 업체들의 가격 파괴 현상이 뚜렷하다. 특히 백화점과 대형 마트는 대대적인 할인 공세와 특가전, 기획전 및 파격적인 이벤트를 연이어 개최하고 배송 품목과 배송 지역을 확대하는 등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제품의 복잡한 기능을 일부 제거하거나 크기를 줄여 가격 대비 가치 경쟁력으로 승부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 등 주요 IT 업체들은 중저가 보급형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장기 불황에 대비하고 있으며, 자동차업계도 소형차를 중심의 마케팅 전략으로 바꾸고 있다.
조사 결과 불황기에는 가격보다 브랜드 이미지나 신뢰도가 중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주 구매하지 못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여 오래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무의식적 불안 회피형’ 소비현상에서 비롯된다. 결국 기업들은 불황기 가격 전략에 매몰되지 말고 좋은 품질을 통한 고객가치 제고에 힘써야 한다. 품질이 담보되지 않은 맹목적 가격 인하 전략은 추후 호황이 왔을 때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모색
최근 수년간 한국 기업들은 재무적 안정성 확보와 리스크 관리 등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지나치게 보수경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을 만큼 낮은 부채비율, 충분한 현금성 자산 확보가 가능해졌고, 이러한 지속적인 노력이 향후 다가올 불황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체질 개선 노력에서 앞서간 국내의 우량 기업들에게는 2009년 경영환경 악화가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5조 원이 넘는 돈을 축적할 정도의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를 함으로써 경쟁업체들과의 치킨 게임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보이며 수익력 확보와 산업 내의 위상 강화에 성공한 삼성전자가 바로 그런 사례이다.
개선된 기초 체력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들은 과거와는 다른 전략으로 불황을 극복할 것이다. 사업구조 개편, 내핍경영 등 어려운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본 조치들과 함께, 소속 산업 특성과 기업별 역량을 반영한 공격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이 출현할 것이다. 특히 최근 한국 기업의 재무적 유연성이나 유ㆍ무형 자산 수준이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어 기업의 복원력, 즉 불황으로 인한 외부 충격을 극복하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역량이 전체적으로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불황기가 오기 전에 이런 역량을 충분히 확보한 우량 기업은 실제 불황이 닥쳤을 때 구사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적 옵션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향후 호황기가 도래했을 때 기존의 경쟁우위를 보다 공고히 하거나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재무적 건전성과 소프트 역량이 모두 높은 기업들은 어려운 경영 환경에서도 과거와 같은 수비 일변도 대응보다는 R&D 및 마케팅 관련 투자를 지속하는 한편, 국내외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 등을 통해 해당 산업 내에서 지위를 공고화하려는 노력을 병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5. 공공정책
신국정 어젠다의 본격 실천
정부는 200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내건 193개 국정과제를 100대 국정과제로 재집약하면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관리 점검 절차에 착수했다. 100대 국정과제와 그에 부속된 세부 과제는 미시적인 실천과제부터 중ㆍ장기 계획을 검토하는 수준까지 다양한 정책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2008년 11월 “경제난국 극복 대책”을 전면에 내놓으면서 기존 국정과제는 불가피하게 일상적이고 장기적인 성격의 국정 운영과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부의 경제난국 극복 대책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핵심으로 한다. 재정정책은 일자리 유지 대책과 긴밀히 연결될 전망이고, 저금리를 기조로 한 통화정책은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을 중소기업과 서민의 부담을 완화하는 데 집중될 것이다. 특히 정부는 경제난 극복 대책으로 규제완화를 설정해 놓고 있다. 기업투자의 핵심 애로 사항인 토지 및 환경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합리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광역 경제권 구축 등 지역발전 정책, 노동시장과 관련한 비정규직 제도 개선 역시 경제난 극복을 위한 응급대책과 국정과제에서 동시에 다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정부는 최근의 경제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정책 구상도 갖고 있다. 외환 및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한 응급 대책과 함께, 기존 국정과제를 뛰어넘어 초대형 국책사업 등 정부 브랜드를 각인할 수 있는 뉴어젠다의 발굴과 실행에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거의 정책 구상이 새로운 모습으로 채색되어 복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도 정책적 관심사항으로 대두될 전망이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 본격 추진
2009년 부동산 정책의 기조는 참여정부와 크게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참여 정부 때 만들어진 정책은 가격 급등 억제 조치여서, 실물경기 침체 우려 상황에서는 이러한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결국 2009년은 부동산 경기를 본격 부양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2008년 11월 3일 발표한 대책은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의 근간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부는 투기 세력의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유지할 방침이다.
2009년 정부의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에 대한 당위성이나 시장 불안 우려 등을 놓고 다양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재건축 시장은 그동안 주택 시장 불안의 진원지로 인식된 탓에 주택시장의 가격 등락에 따라 지속적으로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가운데 기존의 정부 대책을 번복하면서까지 부동산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경우도 있어,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논란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2007년 9월 세제 개편안에서는 1가구 1주택자의 거주기간에 대한 비과세 요건을 수도권 3년, 지방 2년으로 강화하기로 발표했으나, 11ㆍ3 대책에서는 이를 백지화했다. 더욱이 정부가 조제제도 정상화와 실물경기 회복 차원에서 추진 중인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일부 위헌 판정을 받아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외에도 11ㆍ3 대책에 포함되지 못한 정책들(분양가 상한제 개선,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경감 등)이 부동산 시장의 여건 변화에 따라 재검토될 경우 논란이 증폭될 것으로 예상된다.
6. 사회· 문화
경제 불안으로 인한 사회 병리 현상 증가 우려
2009년은 경제 불안으로 인해 사회 병리 현상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불황기에는 시장 활동이 축소되기 때문에 시장에서 교역을 통해 생계 수단을 획득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비시장적인 교역이 증가한다. 비시장적 교역으로는 가계나 친족 간의 교역, 지역 공동체의 자선,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의 소득보전 지출이 있다. 이러한 합법적인 비시장적 교역이 생활을 유지하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경우 사채를 비롯한,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에 있는 거래 형태를 이용하거나, 최악의 경우 완전히 비합법적인 약탈 행위, 즉 범죄에 의존하게 된다.
2009년에는 중산층에도 사회적 병리 현상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년간 소득 양극화로 인해 중산층의 생활고가 가중되었는데, 불황이 이를 심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황기에는 고용 감소와 자산소득 저하로 인해 시장교역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계층이 축소된다. 그리고 금융시장 경색으로 부채를 이용해 소득 감소의 충격을 완화할 수단이 줄어든다. 반면 고용 기회와 소득이 줄어 범죄를 범할 경우 포기해야 할 소득이 감소하므로 범죄비용은 오히려 줄어든다. 실제로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 당시 스스로를 중류 이상의 생활수준이라고 평가하는 강도범의 비중이 1995~2005년의 10년 동안 가장 높았다.
현재 한국의 사회 안전망은 외환위기 때보다 많이 개선되어 있기 때문에 병리 현상을 억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안력 약화는 사회안전망의 범죄억제 효과를 일부 상쇄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부양과 자선 등 사적 소득 이전과 국가와 복지제도가 제공하는 소득이 높을수록 범죄의 편익은 감소한다. 그러나 불황기에는 사적인 이전 소득이 불황기에는 감소하기 때문에, 결국 불황으로 인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국가의 복지지출이다. 실제로 미국은 대 공황기에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대규모 구호정책을 시행하여 범죄를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비용 절약형 여가 활동의 증가
세계적인 금융 불안에 따른 자산 가치 하락과 경기 침체 우려 확산 등으로 2009년 소비심리 위축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심리 위축은 여가 활동에 대한 소비지출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소비지출 전망 CSI(Consumer Sentiment Index)추이를 살펴보면 2008년 들어 전반적으로 모든 소비지출 항목이 하락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행비, 외식비, 교양ㆍ오락ㆍ문화비의 하락 폭이 가장 크다. 2009년에도 장기적 소비부진의 주요 요인인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 일자리 창출력 저하 등이 개선되지 못해 내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어 여가 활동에 대한 소비지출은 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2009년에는 여가 활동에 대한 소비지출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주 40시간 근무제의 확산 등에 따라 사용가능한 여가 시간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비용을 많이 투입하지 않고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활동의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즉 자기 시간을 최대한 가치 있게 사용하고 싶어하는 레저 경제(Leisure Economy)가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 같은 값비싼 여가보다는 영화와 드라마 같이 비교적 저렴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수요가 몰릴 것이다. 그리고 등산, 자전거 타기 등의 스포츠를 동반한 활동, 체험여행이나 문화답사처럼 실질적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여가 활동이 증가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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