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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한 편

나비 _ 류시화

by 홍승환 2008. 9. 23.

 

나비

 

                                        류시화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나비의 그 날개짓 때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내 그리움 때문

 

 

*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절기인 추분입니다.

  이제 가을의 포스가 강하게 느껴지시죠. ^^

  아침저녁 찬 공기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즐겁고 활기찬 가을날의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홍승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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