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스트셀러 도서요약/자기계발서

터닝포인트

by 홍승환 2007. 5. 18.

 

영업 대통령과 최고 컨설턴트의 터닝 포인트

 

 

프롤로그

 

10년 전만 해도 대기업의 부장이면 사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고 경영자에게는 신임 받는 자리였다. 요즘은 기업에서 부장 자리는 소멸하였다. 그렇다면 부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명예퇴직을 하였거나, 기업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전문직을 맡고 있다. 갑자기 세상에 내몰린 4,50대의 전직 부장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기업이라는 온실 안에서 부장이라는 계급장을 달고 책상에 앉아서 지시나 하던 사람이 시장에서 고객을 찾아다니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시장이라는 정글은 위에서 지시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시장의 맨바닥에서 고객과 같은 땅을 딛고 서서 열심히 땀 흘리는 사람을 원한다. 우리는 서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도시의 빌딩 숲이 정글이다. 빌딩 곳곳에 맹수들이 숨어 있다. 이 정글에서는 타잔처럼 살아남아야 한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의 타잔이 등장한다.

 

1부  뜨거운 열정을 불사른 마케팅 천재, 최진실

 

최진실의 성공 노하우를 배우려면 그가 백수로 지낸 6개월 동안의 시간을 먼저 둘러봐야 한다. 어린 시절에 최진실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자신이 공부했던 신학을 포기하자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그에게는 이력서를 낼만한 변변한 학벌도 경력도 없었다. 그때 때마침 주변 사람이 추천한 병원 영업직을 하게 되었다. 병원 영업직이란 기업들의 단체 건강 검진을 유치하는 일인데, 사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규모가 큰 대형 병원으로 가려 하기 때문에, 작은 병원의 입장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최진실은 한 번 만난 고객에게 카드를 직접 써서 보내 주면서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고객 카드로 신뢰가 쌓이자 병원보다는 최진실을 믿고 오더를 주는 회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재정 악화로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자 2년 동안 쌓아 온 신뢰도 무너지고 터전도 무너지게 되었다. 물론 실력을 인정받은 그에게 다른 병원에서의 스카우트 제의가 없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자신의 고객들을 무시하고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병원 일을 그만두게 되고 백수로 보내던 중 병원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차 한 번 팔아 봐라. 망설임이 없을 리 없었지만 최진실은 자동차 영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보험 같은 건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지만 자동차는 어차피 필요해서 사는 거니까.라고 생각하고, 한 번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해서 최진실은 6개월의 백수 생활을 마감하고 1996년 7월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이 세상에 손쉬운 세일즈나 마케팅은 없다. 능력과 요령,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로 저조한 실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세일즈계의 냉혹한 현실이다. 대부분의 세일즈맨들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고객들을 만나기는커녕 주변만 맴돌며 혼잣말을 하기 일쑤다. 설사 고객을 만난다 하더라도 잘 하리라 다짐을 하지만 막상 고객을 만나면 그동안 생각하고 준비했던 말들과 자료들을 꺼내 보지도 못하고 굳어 버리고 만다. 이것이 시장 공포증이다. 최진실은 나름대로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공포증에 걸리고 말았다. 너무 많은 거절을 당하다 보니 이젠 거절당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그를 괴롭혔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던 그가 이제는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기피하게 될 만큼 상황이 안 좋아진 것이다.

 

삼국지 유비는 제갈량을 자신의 군사(軍士)로 삼기 위해 그의 초가를 세 번 찾았다. 유비의 정성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제안에 동의했다. 삼고초려 이야기는 난세의 처세술을 시사하는 심리적 진검승부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유비는 자신의 마음을 팔기 위해 세 번씩이나 자존심을 버렸다. 하지만 제왕으로서의 품위는 절대 잃지 않았고 결국은 자신이 뜻한 바를 얻어 냈다.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최근의 영업 환경도 가히 난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객을 만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스트레스가 될 만큼 시장 공포증이 있다면 그것은 세일즈맨으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최진실은 어떻게 그것을 이겨낸 것일까?

 

어느 날 최진실은 새로운 업체를 방문했다. 업체에 들어서 사무실 문을 노크하려는 순간 문에 잡상인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크게 씌어있었다. 그 순간 최진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잡상인인가?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자신은 절대 잡상인이 아닌 고객에게 양질의 제품을 제공하며 도와주는 세일즈맨이라는 결론을 내고 힘 있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거의 쫓겨나다시피 나와야 했다. 집에 돌아와 자신과 자신의 직업에 대해 생각했다. 나 자신이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세일즈맨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며칠이 지나 그는 다시 사무실을 찾아가 그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말들을 외치기 시작했다. 저는 고객에게 필요한 사람이지 잡상인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그의 눈빛은 며칠 전과 달랐다. 자부심이 가득한 그의 말에 모든 직원들은 어느새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가 자신과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잡상인이 아닌 진정한 프로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최진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 하루는 퇴근길에 자신의 조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다가갔다. 아이는 삼촌이 왔다는 것을 알자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최진실은 이유가 궁금해서 아이의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말했다. 아저씨, 직업이 뭐예요?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영업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데 어느 누가 그 사람의 제품을 믿을 수 있겠는가! 최진실은 자신의 직업을 묻는 당돌한 아이에게 당당한 어투로 말했다. 아저씨는 고객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차를 파는 사람이란다.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면서 세일즈맨 최진실을 신뢰하는 고객의 수는 점점 증가하였고, 조카도 삼촌을 자랑스러워하게 되었다.

 

우선,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위해선 점포가 밀집해 있는 곳이 적당한 장소라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동대문 종합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발에서 쉰내가 나도록 시장을 누비고 다녔지만 일한 만큼 성과가 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세일즈맨들의 첫 번째 영업장소가 동대문 시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진실은 꺾이지 않았다. 모든 영업 사원의 영업장소이기 때문에 이 동대문 상가는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 여기에서 물러나면 나는 끝없이 물러나게 될지도 모른다. 최진실은 동대문 상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하루에 뿌리는 명함과 카탈로그만 해도 한 박스는 넘었다.

 

그렇게 시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면 사무실에 돌아와 그날 받은 고객들의 명함을 정리하고 다이어리에 이름을 새로이 적어 놓았다. 그리고 그 다음엔 일일이 카드 편지를 썼다. 전도사 시절부터 꾸준히 써온 인연 카드였다. 그는 항상 고객을 만나면 인상착의나 특징을 기록해 두는데 카드를 쓸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 고객에게 알맞은 인사말을 쓴다. 혹자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카드 보내기는 한 번에 고객이 나를 기억하게 만드는 효과에 앞서 훗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자연스레 말문을 터주는 계기가 된다. 고객 카드를 받은 최진실의 고객들은 지난번 카드 잘 받았어요.라며 먼저 말을 걸어오게 된다. 즉 고객 카드는 고객과 최진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생활하며 고객들과 친해지면서 입사 6개월 만에 총 8대의 차를 팔았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으며 부지런함에도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최진실은 평범했다. 지금은 특별해진 그의 이름인 최진실도 영업을 위해 만든 가명이다. 원래 그의 이름은 최진성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이름이 필요했다. 그때 진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최진실 하면 느껴지는 이미지가 귀엽고 상냥하고 친근감이 있어서 좋을 듯했고, 무엇보다 진실이란 단어가 주는 신뢰감이 영업에 잘 맞아떨어졌다. , 최진실? 그러고 보니 곱상하게 생겼네. 사람들은 예전 같았으면 쓰레기 취급을 하며 던져 버릴 그의 명함을 한 번 더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름을 바꾼 후엔 어디를 가든 , 진실아, 어이, 진실아. 하며 친근하게 부르는 상인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상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최진실이 현대자동차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업소에 근무하는 세일즈맨이 모여 단합을 도모하는 자리가 있었다. 뒷풀이에서 얼큰하게 술을 마신 한 세일즈맨이 2차를 외치면서 동료들을 재촉했다. 그때 최진실에게 중요한 고객에게 전화가 왔다. 고객은 오늘 차를 구입할 예정이니 지금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 달라는 요구를 했다. 이에 최진실은 당장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주위에 앉은 고참 세일즈맨들의 불평이 흘러나왔고 결국 회식 자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말았다. 다음날 그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차를 구입했습니다. 차를 계약하는 데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세일즈맨과 한다는 것이 꺼려지더군요. 이때 최진실은 깨달았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이후로 최진실은 술을 거의 안 마신다.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제 어떻게 했느냐가 오늘을 좌우한다.

 

제법 열심히 한다는 세일즈맨들도 흔들리기 쉬운 것이 시간 관리이다. 세일즈맨의 할 일은 밥 먹고 수다를 떠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친분을 쌓아야 할 영업 사원이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시간을 헛되게 소비한다는 건 알맹이가 빠진 과일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일즈맨들 스스로도 대부분 느슨하게 생각하고 주위에서도 세일즈맨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결과다. 자신이 정해 놓은 기준이 흔들리면 항상 주위에서 유혹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좀 심하다 싶을지 모르지만 최진실은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에도 퇴근 후에야 갔고, 이사를 할 때도 아내 혼자 사람을 불러 했다. 처음엔 그의 아내도 좀 서운해 했지만 이제는 으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최진실이 집안의 경조사며 집안일에 끌려 다녔다면 판매왕 최진실은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원칙을 지켜야 한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한 번 타협하기 시작하면 그걸로 끝장이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생전 만나 보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서 영업을 하는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가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지금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영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 1998년 5월, 최진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으며 의식을 잃게 되었다. 다치고 병원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그동안 열심히 살아 왔던 지난 세월이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가며 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던가? 오늘 마지막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더 이상 노력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 했던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아낀 것이 아니었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일 년 후에도 행복하지 않다. 최진실에게 일을 대하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진실은 팔에 깁스를 하고 환자복을 입은 채로 영업소에서 카탈로그를 가져왔다. 더 열심히 살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게 된 그가 병원에서까지 영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같은 층에 입원해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동차 사고로 들어온 환자였으므로, 모두가 차를 새로 구입하지는 않겠지만 잠재 고객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같은 환자의 입장이니 자연스레 사고 처리와 보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동차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한 곳에 명함과 카탈로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 환자는 물론이고 병문안을 온 친척, 친구들도 그의 고객이었다. 성공에 가장 근접한 키워드는 바로 즐거움이 수반된 열정이다. 열정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항상 열정적이어야 한다. 최진실은 전과 달리 즐겁게 일하니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되었고, 성과도 올라가게 되었다.

 

시장이라는 정글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최진실은 그 무기를 찾아냈다. 예절은 고객이 영업 사원을 판단하는 가장 빠른 척도라 할 수 있다. 때로는 상품 설명에 앞서 영업 사원의 태도가 고객의 마음을 좌우하기도 한다. 깍듯하고 겸손한 태도를 반영하는 고객 예절은 영업 사원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객을 쫓는 세일즈맨의 유형을 보면 고객을 만날 때 자기 혼자 말을 많이 하고, 기본적인 매너가 없거나, 불친절한 사람, 고객과의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등 기본적인 예절이 결여된 사람이다. 이와 반대로 생각한다면 고객이 쫓아오게 하는 답은 이미 나온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판매해야 한다. 세일즈맨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 정신만을 가지고 판매왕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자신을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세일즈맨마다 모두 자신의 스타일이 있다. 최진실의 영업 스타일은 발로 열심히 뛰는 스타일로, 영업을 하는 것이다. 최진실은 지금도 틈만 나면 퇴근 후에 아파트나 상가 등을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뿌린다. 세일즈맨들 중에는 전단지 뿌리기에 부정적인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뿌린다고 바로 연락이 온다면 그것처럼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더 많이 발품을 팔고 다니면 분명 연락하는 사람이 생긴다. 한번 해보고 안 되면 쉽게 포기하는가, 남들보다 두세 배 더 노력하는가? 성공과 실패는 그 차이이다. 그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낭비도 없다.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며 많은 양의 일을 해낸다.

 

최진실은 영업을 하기 제일 좋을 때는 비가 오거나 혹은 몹시 춥거나 더울 때라고 생각한다. 그때 시장에 나가 보면 다른 세일즈맨을 찾기 힘들다는 장점이 있고, 또한 경쟁자가 없어 좋고, 손님도 없어 한산하니 시장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기 때문이다. 궂은 날 열심히 한다며 시장 상인들이 격려도 해 주니 더욱 힘이 날 수도 있다. 결코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그저 대충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하다 혹 운이 좋아 작은 성취를 이룬다 해도 오래 가지 않을뿐더러 그건 오히려 살아가는 데 해가 될 수도 있다. 노력이 따르지 않은 한때의 행운은 복권 당첨처럼 오히려 그의 인생을 망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열정적인 세일즈맨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를 설득시킨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뛰면 슬럼프에 빠질 틈도 없다.

 

시장에서 장사나 하는 사람이라고 남들은 우습게 여길지 모르나 사실 동대문 시장에서 점포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상인들은 다들 먹고 살 만큼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연스레 자동차도 고급차량을 타고 다닌다. 하지만 시간을 내기 힘든 상인들은 차를 구입하려 해도 직접 영업소를 방문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 힘들다. 동대문 상인들이 최진실에게 차를 구입하는 이유는 그가 모든 것을 도맡아 제 일처럼 처리해 주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최진실의 영업 방식의 승리인 셈이다. 하지만 단지 세일즈를 하기 위해 최진실이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동대문 시장을 찾는 것은 아니다. 말단 점원에서 시작해서 점포를 갖게 된 시장 상인들의 성공담과 고생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솟아 오르는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세일즈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말이다. 되도록 적게 찍고 빠르게 구매를 결정시켜야 다른 고객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징물을 창조하여 고객에게 쉽게 기억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진실은 고민하다가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그리고 내친 김에 복장도 퀵 서비스 복장(후엔 연미복)을 선택했다. 덕분에 한 번 그를 본 사람들은 이제 최진실의 얼굴은 잊어도 복장만큼은 기억했고, 매출도 비례해서 상승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엔 선배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고 자신도 밖에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일주일 동안 거울 앞에서 연습을 했다. 한동안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얼굴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최진실 자신의 세일즈를 후회 없이 만들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도 주저함도 사라졌다.

 

그가 주저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버린 이유는 고객이 상품을 선택할 때 구매의 순간은 아주 짧기 때문이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판매 역시 뒤돌아가지 못한다.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라는 공식 따위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처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면 그 고객은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다. 열 번을 찍어도 넘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세일즈맨이 3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에 고객을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없다면 오히려 고객에게 설득을 당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세일즈맨으로서 후자의 상황에 놓여진다면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최진실은 그만의 튀는 복장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상징성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그만큼 판매량도 상승하는 효과를 보았다.

 

최진실은 두 번 결혼했다. 한 번은 아내와, 또 한 번은 현대자동차와 결혼했다. 그는 회사와 제품을 자신의 아내만큼이나 사랑한다. 이처럼 세일즈맨들의 힘은 내 회사의 제품을 사랑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최진실은 매일 아침 현대자동차 판매왕 최진실로, 현대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경이적인 인물로 영원히 남겨지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상상한다. 이런 미래의 청사진을 위해 최진실이 일에 전념하는 모습은 정열적이다. 그의 소망은 영원한 세일즈맨으로 남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일즈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놓은 모델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갈고 닦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 주고 싶은 마음에 대학이나 영업에 대한 전문 기관, 혹은 학원이 생긴다면 그런 곳에서 강의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그저 판매만 잘하는 사람보다는 존경받는 선배, 존경받는 세일즈맨이 되고 싶은 것이다.

 

영업을 하다 보면 여러 유형의 세일즈맨을 만나게 된다. 자기 나름대로는 열심히 세일즈를 한다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같은 노력을 하면서도 큰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세일즈맨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부류의 세일즈맨은 고객이 차를 사겠다고 덤벼들어도 차를 팔지 못한다. 고객을 끌지 못하고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세일즈맨이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선 팔고자 하는 욕망을 지나치게 내비쳐서는 안 된다. 고객에게 쓸데없는 반감을 가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끌려오게 만드는 세일즈맨 유형은 고객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고, 고객을 자신의 실적을 채우려는 욕망의 수단이 아닌 친한 친구나 친척 같은 따스한 정을 나누는 사람으로 보는 성향이 있다. 최진실은 고객을 끌어당기는 세일즈맨이다.

 

영업과 삶의 공통점은 전쟁이라는 것이다. 다른 경쟁자들보다 많이 팔기 위해선 남과 다른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집요한 세일즈맨들은 가끔 고객을 너무 소홀히 대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집요하게 물건의 구매를 강요하다가 목적을 이룬 뒤에는 두 손 털고 사라지는 것이다. 고객 관리에 소홀한 세일즈맨은 오래가지 못한다. 최진실은 고객을 관리한다는 말을 싫어해서 식구를 대하는 마음으로 고객을 대한다. 식구들 사이에는 안부를 묻고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나누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처럼 그는 고객들의 경조사를 함께하며 세일즈를 하는데, 이는 중요한 인연의 고리를 단단하게 엮는 역할을 한다. 최진실은 하나의 끈을 던져 주면 그 끈에 엮인 모든 실을 뽑아낸다. 그런 능력의 원천은 그의 고객을 끄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최진실은 여느 때처럼 영업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축하해. 영업소에 들어서자 동료들과 소장이 최진실에게 난데없이 축하의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최초에 세운 목표인 250대를 판 최진실은 결국 판매왕의 자리에 오르고 말았다. 판매왕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받은 최진실은 처음 세일즈를 하러 나섰을 때의 생경함을 떠올렸다. 그런 그가 이제 자동차 세일즈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온몸으로 희망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최진실 씨의 열정을 확인해 볼 수 있겠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뒷주머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마치 고객에게 영업을 하듯 자기소개를 했다. 그날 방송을 지켜보던 나는 세상의 그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그가 한다면 최고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케팅 천재는 재능과 열정으로 만들어진다. 이를 달리 말하면 재능과 열정, 이 2가지만 갖추면 평범한 사람도 자동차 판매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막연한 희망과 진지한 열정을 구분하는 능력은 있어야 한다. 꿈과 희망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는 막연함이 아닌 현실에서 즐거움을 수반한 열정이 필요하다. 고객을 알고 영업에 임한 최진실은 3년 연속 전국 판매왕의 자리에 오르며, 현대자동차의 간판스타를 넘어 한국의 인기인이 되었다. 빨간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한 대를 판매한 꼴이 되는 판매 기록을 세우며 처음 영업을 시작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일에 임하는 최진실의 눈에서 밀림에 홀로 선 타잔의 열정과 힘이 느껴진다.

 

2부  불굴의 용기로 도시 밀림에 당당히 맞선 컨설턴트 황제, 김영한!

 

이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려 합니까? 내가 회사를 그만두려 하자 관리 본부장인 송 상무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 삼성전자는 좋은 회사입니다. 그러나 저는 혼자서 시장에 서고 싶습니다. 제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1977년 나는 컴퓨터 산업의 불모지였던 삼성전자에 경력 사원으로 입사했다. 7명이 시작한 사업이 제조 공장을 가지게 되었고, HP와 합작 회사도 출범하였다. 나도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이사 대우까지 빠르게 승진하였다. 그러나 항상 잘 나갈 때 그만두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 사업이 이제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나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송 상무는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부디 성공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나는 좋은 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있을 때의 실력은 내 실력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착각 속에 빠지게 하고 관료 바이러스가 번져서 관료화된 인간을 만들어 버린다.라는 생각으로 삼성전자라는 회사의 옷을 벗었다. 마흔 살이 되면서 더 늦기 전에 내 인생의 2막을 다시 시작하자.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서초동에 하이테크 마케팅 연구소를 설립하고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마케팅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마케팅 교육이라는 것은 기업 운용에 있어 새롭게 등장한 것이었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었고, 삼성 그룹에서 잘 나가던 사내 강사로서의 경력은 교육생들에게 큰 호감을 주는 메리트로 작용했다. 하지만 IMF가 닥치자 모든 기업이 어려워졌다. 때문에 회사의 수입은 크게 줄어 직원과 사무실을 축소해야 했다.

 

이때 경제 신문을 보다가 인터넷 비즈니스 성공 사례 발표회라는 사고(社告)를 보고 이 세미나를 주관한 이코퍼레이션의 김이숙 사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난 현장 경험으로 만들어진 능숙한 나의 강의를 높게 평가한 김이숙 사장은 아예 자신의 회사의 컨설팅 업무를 총괄할 부사장으로 들어와 달라고 제의하였다. 나는 신종 인터넷 비즈니스로, 그리고 잘 나가는 벤처기업의 부사장으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강의 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새로운 벤처 성공을 위한 열정에 50대가 넘은 나이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내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홍보되어 많은 고객들을 강의실로 불러들였고, 그들에게 생소한 인터넷 비즈니스 지식을 들려주며 새로운 사업에 대한 성취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과 시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김이숙 사장이 나에게 제의를 해 왔다. 요즘 벤처들이 너무 많은데 이 많은 회사들이 투자자를 쉽게 만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나 역시 그런 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곧바로 실행에 옮겨 삼성동 코엑스몰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투자 박람회를 열었다. 5,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성황을 이루었고, 그들 사이에 오고 간 투자율은 20배에서 50배까지 늘어나 기대심리가 팽배해 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주시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만 소개하고 있는가? 내가 직접 벤처 회사를 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이에 나는 브레인 뱅크라는 인터넷 전문 인력을 인터넷 온라인으로 연결시켜 주는 전문 리쿠르팅 회사를 설립했다.

 

4~5개월이 지나 브레인 뱅크의 웹 사이트 개발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젠 홍보를 위한 자금이 필요했다. 2000년 6월 본격적인 투자 유치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인터넷 회사들이 실적 없는 버블이라고 인식되어 투자가 급랭하고 있었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투자회사 임원들을 만나 우리 회사에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답변은 냉정했다. 나를 믿고 한 번만 투자를 해 달라는 말도 벤처의 거품이 사라지는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준비한 사업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사업은 20배의 투자율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던 사업이었기에 나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욱 투자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이 모든 것을 만들기까지는 세심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역시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브레인 뱅크 자금 사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 결국 파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파산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목적 없이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을 다녀 보았다. 지하철 역사 구석에 자리 잡은 노숙자를 보며 저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패는 할 수 있으나 실패보다 무서운 것은 그 실패 후에 포기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려울 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았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되살려야 했다. 비록 짧은 순간 잘못된 생각에 그동안 쌓아 온 많은 것을 잃었지만 나는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시간이라는 자본금이 남아 있고, 실패로 쌓아올린 경험과 나를 도와줄 많은 고객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앞으로 극복해야 할 가시밭길이 놓여 있음을 스스로 절감했다.

 

삼성전자라는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일을 벌이다가 쫄딱 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청 앞을 걷고 있을 때 삼성에서 안면이 있던 지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근처 커피숍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사업을 하느라 실패해서 지금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제가 지금 삼성화재에 있습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대출을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다시 한 번 시작해 보십시오. 나는 그렇게 간신히 3,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1년 전만 해도 3억 원이 커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가 쥔 3,000만 원은 피같이 귀하게 느껴졌다. 고맙게도 알고 지내던 카센터를 운영하는 김내동 사장이 자기 사무실 일부를 흔쾌히 나누어 쓰자고 해서 사무실 임대료도 아낄 수 있다. 그렇게 벤처 CEO라는 회사를 만들어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6개월 이상 집에 생활비를 주지 못하자 나이 50이 넘은 아내는 베이비시터 일을 나갔지만 직원 2명의 월급은 꼬박꼬박 밀리지 않고 줬다. 아내는 여느 때와는 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결심한 듯 한마디 했다. 여보, 외환위기 전 잘 나가던 기업체 강사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게 어때요? 강사?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의 말은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서 있던 것이었다. 나는 내 길을 방치해 두고 다른 길에서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저녁, 터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가 보니 식탁엔 아내가 두고 간 것 같은 편지가 놓여져 있었다. 편지 봉투 겉면에는 존경하는 남편에게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월급봉투 하나 제대로 가져다주지 못하는 못난 나를 이토록 믿어 주고 존경한다니 아내와 나를 위해서라도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나의 열정은 포기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김이숙 사장을 만나 그동안 지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벤처 기업들은 제품은 있는데 마케팅이 부족했고, IT 산업에 진출한 대기업들 역시 세일즈가 잘 안 된다는 정보를 접하자, 나는 벤처 기업에 세일즈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벤처 기업의 세일즈 교육 과정 사업 구상을 김이숙 사장에게 설명했다. 참 좋아 보이네요. 바로 시작합니다. 김이숙 사장은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이코퍼레이션에서 기업체를 상대로 세일즈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 신청자가 제법 몰려 IT 영업 세일즈 교육 과정의 니즈를 실감했다. 혼자 하루 8시간 강의로 몸은 고됐지만 고객을 보니 절로 흥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벤처 CEO가 뭐 하는 곳이죠? 이 전화는 나에게 충격과 함께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딘가를 알려 주었다. 회사 이미지가 고객들에게 어필되지 않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고객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회사의 컨셉트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벤처 CEO라는 이름을 바꾸면 그동안 고객에게 전달된 홍보와 정보에 대한 비용과 노력보다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이름이 좋을지 생각했다. 그때 마케팅 교육을 하되 경영 대학원 수준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MBA를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마케팅 MBA라는 새로운 회사 이름이 만들어졌다. 어느 누구라도 이 새로운 회사 이름을 접한다면 나의 사업 목적과 의미를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장이 아니라 실무자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매일 3355를 실행한다. 고객과 친밀히 접촉하여 그들의 생각을 모니터링하고 귀중한 정보를 손에 넣고 다시 나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정보를 재단하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다. 첫 번째 3은 신문, 잡지, 인터넷의 3가지 미디어를 뜻한다. 두 번째 3은 하루에 3사람 이상 고객을 만난다는 원칙이다. 세 번째 5는 하루에 5명 이상의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네 번째 5는 매일 5건 이상 고객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3355 전략은 며칠간은 지키기 쉬워도, 몇 달, 몇 년 이상 지속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다고 3355 전략을 무시하고 뛰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지내다 보면 나는 고객과 점점 멀어진다. 시장 안으로 뛰어들어서 고객과 같은 땅을 짚고 이야기해야 한다.

 

대학들이 과거의 교육 방식으로 양성한 학생이 기업에 가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기업체의 CEO 경력이 있는 사람이 대학에서 교육을 하자는 생각이다. 대학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하여 기업의 실무 지식을 가진 사람을 교수로 채용하자는 프로그램이다. 각 대학에서 기업 CEO 출신을 계약제 교수로 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을 했다. 국민대 경영 대학원 유지수 원장은 이 프로그램에 나를 추천했다. 삼성전자를 그만둘 때 막연하나마 대학교수가 되어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계약직 교수지만 대학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제는 대학에 가서 내가 기업에서 배운 실무적인 지식을 젊은이들에게 전수하려고 한다.

 

어느 날, 신문 지면을 넘기던 중 이색적인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야채 가게도 벤처다.라는 굵은 활자는 나의 시선을 정지시켰다. 판매 전략, 고객 전략, 직원 전략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가게 위치를 보니 우리 회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바로 신문을 접고 그곳을 찾아갔다. 자연의 모든 것이라는 큼직한 간판 아래 젊은 직원들과 아줌마들이 정겹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과일을 팔고 있었다. 한나절이 지나도 손님들로 가게가 계속 붐비자 전국 평당 최고 매출 점포라는 기사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야채 가게의 사장 이영석을 만나기 위해 가게로 곧장 뛰어가 그를 찾았다. 야채 가게 이야기를 책으로 냈으면 합니다. 혼자 쓰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니, 저랑 공저를 하는 게 어떤지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영석과 나누면서 그의 고객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렇다 할 큰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나에게 이영석과의 만남은 큰 감동을 주었다.

 

나는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쓰기 위해 원고를 쓰는 2개월 동안 매일같이 이영석을 만나기 위해 야채 가게를 가 보았다. 직원들에게 의견을 듣고 곧바로 서점으로 가서 독자들이 요구하는 책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았다. 읽기 쉽고 재미있는 책을 원한다는 답변을 얻었다. 나의 깨달음은 그 순간에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독자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책을 써 온 것이었다. 나는 원고를 스토리 식으로 바꿀 것을 다짐하고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아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새로운 변화, 새로운 용기를 받아들여야 오랫동안 나를 편협하게 가두었던 이기심과 근시안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한 글자씩 고쳐 나갔다. 또한 야채 가게의 책 제목을 결정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고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SBS TV에 방영된 적이 있던 야채 가게 비디오테이프 중에서 아줌마들이 총각네 가게 가자. 하는 소리가 귀에 색다른 느낌으로 들려 왔다. 나는 고객들이 부르는 소리가 진짜 책의 제목이라고 믿고 백지 위에 총각네 야채 가게라는 글을 써 보았다. 고객과 같은 땅을 밟고 생각해야 한다.

 

축하합니다. 총각네 야채 가게가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전화기를 통해 출판사 직원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근을 하기 무섭게 총각네 야채 가게를 읽고 감명 받은 독자들의 소감을 담은 전화가 빗발쳐서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할 정도였다. 나는 고객들이 책을 읽고 받은 감동을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게 실제 현장에서 체험을 할 수 있는 총각네 야채 가게 견학 프로그램을 대형 서점과 공동으로 기획했다. 기업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총각네 야채 과정이 실리자 삼성, SK, LG, CJ에서 교육 문의 요청이 쇄도했다. 특히 삼성의 교육 담당자 반응은 유독 컸다. 그 이유는 그동안 이루어진 기업 교육이 이론에 치중하고 있어 시장의 고객들과 다소 이질감이 없지 않았는데 총각네 야채 가게 교육 프로그램은 이런 문제점을 말끔히 치유할 장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조금 기다린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자기 자신 안에 갇혀 다른 이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제 목소리만 낸다면 아무리 짧게 의사를 전달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책이란 머리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발로 쓰는 것이다. 성공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삶 속에서 성취하는 것이라고 볼 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망은 용기를 타고 온다. 내 안에 무한한 능력이 있고, 끝없는 가능성과 기회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용기를 가진 이들은 희망이 있다. 무한하게 펼쳐 나갈 인생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발명이라도 처음엔 불가능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발명하지 못한다.

 

문득 마흔 살이 되던 해에 두려움 없이 삼성전자에 사표를 냈던 기억이 났다. 그 후 17년 동안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50대 후반에 접어들게 되었다. 가끔 내가 삼성전자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언젠가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면 타의로 그만두는 것보다는 자의로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자의로 그만두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감 있게 시작하고 실행할 수 있지만 타의에 의해 그만두게 되면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 상태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방황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다가 작은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자의로 그만둔 사람은 다시 도전을 하지만 타의로 그만둔 사람은 갈수록 자신감을 잃고 주저앉게 된다. 나는 두 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또다시 도전한다. 맨손으로 도시 정글을 누비고 다니면서 판매왕이 된 최진실을 보면서 나도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쉰여섯인 오륙도이지만 타잔처럼 다시 시장을 뛰었다. 커다란 실패를 경험한 덕분에 웬만한 작은 실패에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평일에는 기업체를 다니며 강의하며 사람들을 만났고, 휴일에는 사무실에 출근하여 책을 썼다. 이제는 기업체에 있는 사람들이 내 책을 두세 권 정도 읽었고, 강의도 주로 임원이나 간부급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금전적으로도 쪼들리는 상황은 아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직원들 월급을 주는 일이 힘들어 한 명의 직원만을 두었지만 이제는 4명으로 늘었다. 나는 마케팅 MBA'와는 별도로 하나의 콘텐츠를 교육과 출판,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기획사를 설립하였다. 쉰일곱 살에 새로운 회사를 창업한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나 김영한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찾아 열정을 불붙이며 산다는 것이다.

 

에필로그 - 우리 모두는 정글에 서 있다

 

나는 벤처 기업을 하다가 파산했을 때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봉천동 산꼭대기에 있는 서민 아파트의 높은 층이었다. 산꼭대기의 27층이니 서울이 모두 발 아래에 있었다. 멀리 발 아래로 보이는 빌딩 숲이 정글과 같았다. 오늘도 저 빌딩의 정글을 뛰어다니며 나의 시장을 개척하고 내 고객을 만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현재의 시장 상황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정글과 같다. 글로벌 경쟁 체제로 전환되면서 모든 기업들은 언제 어디서 맹수가 뛰어나와 자신을 위협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앞을 알 수 없고 그러면서도 항상 경쟁자들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장 정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걱정해야 할 때이다.

 

정글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 타잔이 있다. 타잔은 맨몸으로 정글에서 살아남았고 밀림의 왕자가 되었다. 1999년에 월트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타잔 애니메이션 영화는 탄생에서부터 어린 시절, 고릴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의 심리적 변화를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동물과의 심리적 대화를 통하여 정글의 법칙을 이해하고 생존하는 방식을 터득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50여 편의 타잔 영화 속에서 나타난 정글에서의 생존법을 오늘날의 시장 정글 스토리와 비교해 보자. 타잔의 생존 기법 중에서 시장 정글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될 만한 교훈적인 메시지를 10가지 뽑아 보았다. 나는 타잔의 리더십을 보면서 이 시대의 도시 아프리카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 정글의 법칙을 이해한다.

- 나무 위에서 멀리 본다.

- 멀티 스킬을 익힌다.

- 팬티만을 입고 뛴다.

- 자신만의 소리를 지른다.

- 도구를 개발한다.

- 밧줄을 타고 빠르게 움직인다.

- 강자를 이긴다.

- 맹수마다 전략을 다르게 한다.

- 작은 팀과 서서 회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