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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한 편

은행나무 _ 반기룡

by 홍승환 2010. 10. 29.

 

은행나무

 

                                      반기룡



신사 한 분이 서 계신다
노란 옷을 입고 아무 말없이 빗방울을 맞으며
온몸을 촉촉이 적신 채 흠뻑 명상에 취해 계신다

노랗게 물든 이파리를 바르르 떨며
된서리가 내리면 냉기를 받아 온몸에 주사선처럼 보내고
찬바람이 불면 미련하게 맞서지 않고
조용히 뿌리로 그 기운을 전송한다

은빛 살구나무라 불리기도 하며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고 님에 대한 애간장을 태워
썩은 내음이 대명천지에 진동한다는 설도 있고 보니

밀알 한 알이 썩어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듯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자신을 망가뜨렸구나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처럼 단단한 지혜를 발견하였구나

 

 

* 2010년 10월 29일 금요일입니다.

  거리에 은행이 잔뜩 떨어져 퀘퀘한 향이 가득합니다.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잘 마무리 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홍승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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