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없는 우리집
김의수 지음
Chapter 1 돈 걱정에 머리 빠지는 김헌수
홍콩의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빌딩 38층 레스토랑에서 김헌수 차장 가족은 자신 앞에 놓인 잔을 들며 서로에게 축하를 건넸다. 화려한 장식과 전구로 치장한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캐럴과 더불어 홍콩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을처럼 선선한 날씨와 연말 특별 세일이 끼어 있고 크리스마스의 화려함까지 즐길 수 있는 홍콩은 쇼핑을 좋아하는 아내 취향에 딱 맞았다. 김헌수 차장 가족은 낮 동안 열심히 쇼핑했다. 사실 집을 장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해외여행은 다소 무리였지만 새해가 되면 작년 가을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김안일 부장의 뒤를 이어 자신이 부장으로 승진할 터, 이 정도 지출은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관례적으로 바로 아랫사람이 승진해 온 것을 감안하면 김 부장 밑에서 15년간 일한 김헌수 차장이 후임자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들 생각했다.
김헌수 차장은 3년 전 2억 원을 대출 받아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32평짜리 아파트를 장만했다. 이사하면서 새집에 어울리도록 인테리어도 전부 새로 했고, 가구도 새것으로 바꿨다. 모두 새것으로 바꾸고 보니 집이 훨씬 넓어 보였고 세련미도 넘쳐 보였다. 일부러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도 하고 가족 모임을 만들어 저녁을 사기도 했다. 비용이 제법 들었지만 새집을 마련했다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다 보니 이 정도는 몇 년 고생하면 갚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돈은 모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교육비도 점점 늘어났다. 또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몸은 점점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에 젖어 들었고 지출은 점점 더 늘어났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물건을 고를 때 ‘이왕이면 조금 더 나은 것’, ‘ 이왕이면 더 고급스러운 것’을 찾았다. 때로는 ‘수입에 비해 지출이 지나치게 많은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지만 ‘아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며 애써 외면했다.
꿈같은 연말연시 휴가를 보내고 새해 첫 출근을 하던 날, 김헌수 차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김 차장이 승진하리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후임자는 다른 기업에서 스카우트해 온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 후임자는 다름 아닌 대학 시절 한때는 막역하게 지내던 2년 후배 강대책이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회사는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는 소문으로 온통 술렁거렸고, 소문은 사실이 되었다. 비로소 생존의 문제가 절실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올 여름 아내마저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집안 수입은 반 토막이 났다. 은행 대출이자와 새로 장만한 자동차 할부금만으로도 김 차장 월급의 40%가 날아가 버린다. 김헌수 차장은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아온 자신이 또 한 번 원망스러워졌다.
Chapter 2 김헌수, 돌파구를 찾다
김헌수 차장 부부가 나를 찾아온 것은 3년 전 봄이었다. 김 차장 가정의 재무적 질병이 깊어진 뒤였다. 살다 보면 어느 가정이나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한순간’이 잘못되면 ‘파산’으로 치달을 수 있다. 김헌수 차장 가정이 위기를 맞은 ‘한순간’은 무리해서 집을 구입한 순간이었다. 맞벌이라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과소비를 한 것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이런 경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김헌수 차장 부부는 가정상황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몇 가지를 질문한 뒤 회복방안을 제시했다. 당장은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 가정은 회복이 가능했다.
우선 집을 팔고 전세로 줄이라고 제안했다. 나는 이 부부에게 현재 가정의 매월 현금흐름표와 2년 뒤 파산까지 이르게 되는 연 현금흐름표를 함께 보여 주었다. 가계수지표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부인이 마침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김헌수 차장 가정은 맞벌이였을 때 집도 사고 차도 사는 등 별 걱정 없이 소비생활을 했지만 아내가 갑자기 실직하는 바람에 매월 200만 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면서 저축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부부는 내 집과 차가 있다는 심리적 포만감 때문에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김헌수 차장 가정은 이사를 했다. 32평에서 24평으로 집을 줄이다 보니 정리할 짐도 많았다. 이사하는 날 부인은 기어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분명 ‘희망’이 있었지만 막상 이사하니 몇 달은 힘들었다.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처분한 가구, 집에 대한 집착을 그때까지도 버리지 못했다. 애지중지하던 은빛 자동차를 판 김헌수 차장 역시 의기소침했다. 친구들조차 만나기 싫어했고 헌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가 창피해서 지하철로 출퇴근을 했다.
하지만 김헌수 차장 가정이 32평 아파트를 팔고 24평 전세로 이사를 간 뒤 매월 적자였던 월 가계지수는 흑자로 돌아섰다. 우선 매월 150만 원 정도 지출되던 주택담보대출이자와 마이너스대출이자의 지출이 없어졌다. 또 부부가 각각 몰고 다니던 두 대의 차 중 김헌수 차장이 몰고 다니던 새 차를 팔자 매월 나가던 차량 할부금도 없어졌다. 거기다 주거생활비를 3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식비에서 10만 원, 김헌수 차장의 용돈에서 10만 원을 줄였고, 보장성보험료도 57만 원씩 불입하던 것을 27만 원씩 불입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그러자 매월 200만 원 이상 적자였던 가계수지가 매월 53만 원의 여윳돈이 생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김헌수 차장 가정은 32평에서 24평으로 차 두 대에서 한 대로, 겉보기에는 가난해졌지만 속은 더 알차졌다. 그리고 자산이 모이고 있다. 가난해졌지만 부자가 되는 길로 들어선 것이다.
Chapter 3 김헌수 가정을 살린 재무설계 원칙
김헌수 차장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무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목적의식도 없이 주위의 단편적인 재테크 정보에 이러저리 휘둘린다. 막연히 ‘돈만 모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결국에는 맹목적인 재테크를 시도한다. 우리가 돈을 모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나와 가족이 필요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자금이 있다. 생활자금, 결혼자금, 주택자금, 노후자금, 자녀교육비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우리 수입이 필요한 일들을 모두 하며 살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이다. 재무설계란 수입과 지출 사이의 갭(gap)을 메울 방법을 모색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일련의 의사결정 과정이다. 재무설계는 재테크보다 먼저 진행되어야 하는 필수단계이다.
우리 청년들이 부모님에게서 용돈을 받다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대체로 매월 150만 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희망이고 즐거움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미혼들에게 나타나는 소비에 대한 자신감은 결국 자동차 할부 구매로 귀결된다. 3년짜리 할부 인생이 막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들의 재무구조는 왜곡되기 시작한다. 자동차 할부가 끝날 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한다. 자동차 할부가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전세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도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상당량의 돈을 저축할 수 있다. 자녀가 있다고 해도 중학교 입학 전까지는 자산을 증식할 기회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결혼하면 무조건 집부터 사야 한다’는 잘못된 사회 통념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에 집을 장만하기 위해 또 다시 더 많은 대출을 받는다.
할부 인생은 갈수록 금액이 커지고 기간도 길어진다. 직장생활 초기에 자동차구입으로 3년 할부 인생, 다시 결혼을 위해 전세 보증금 대출로 4~6년 할부 인생, 그리고 내 집 마련을 위해 20년이라는 기나긴 할부 인생이 전개되는 것이다. 겨우겨우 고비를 넘기며 열심히 저축한 돈으로 아파트 담보 대출을 갚을 즈음에는 다시 자녀들의 대학교육비가 필요하다. 현재 대학생 한 명에게 들어가는 돈은 매년 1,000만 원 정도로, 4년 동안 4,000만 원 이상이 소요된다. 만약 둘째 자녀까지 대학에 입학하면, 즉 한 가정에 대학생이 두 명 이상이 되면 상황은 급변한다. 요즘 주위에 둘째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큰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가정이 많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끌고 나간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말 여기까지다. 자녀들이 대학 다니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기가 무섭게 자녀들의 졸업이 다가온다. 부모들은 이미 50대 중반을 훌쩍 넘겼다. 문득 부모들에게는 ‘노년의 삶’이 엄습한다.
이상의 내용을 물통으로 비유해 보자. 32세 가장이 정년 퇴직하는 55세까지 24년간 공급할 수 있는 물의 총량을 약 14억 리터라고 가정해 보자. 24년간 평균 연봉을 5,800만 원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내 집을 마련하고 7년마다 자동차를 바꾸고 자녀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24년간 채워야 할 필요량은 16억 리터이다. 2억 리터의 차이가 나지만 은퇴 직전까지는 그런대로 필요한 양을 채우고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은퇴하고 수입이 끊어지면 ‘노후준비’라는 물통이 나타난다. 그때는 이미 물 공급은 끊어진 상태다. 60세에서 85세까지 필요한 생활비를 월 200리터라고 했을 때, 필요한 물의 양은 약 6억 리터이다. 그런데 물의 공급은 이미 끊어졌다.
총 필요량은 고려하지 않고 내 집 마련이나 자동차구입, 교육비 등의 물통을 채우느라 급급했던 것이다. 노후자금이라는 물은 애초부터 채워 보지도 못한 셈이다. 우리는 수입이 필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이 갭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결국 재무관리의 핵심이다. 어려운 숙제이긴 하지만 답은 오히려 간단하다. 각종 물통에 물을 다 붓는 것이 아니라 70~80%만 채우는 것이다. 가령 아내는 ‘내 집 마련’ 물통을 100% 채우기 원하고 남편은 50%만 채우기 원한다면 서로 합의해서 평수를 줄이거나 구입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수입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준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평생 벌 수 있는 돈의 한계를 파악한다면 미리미리 재무관리를 해서 대비할 것이다.
재무관리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 우리 가정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재무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가정의 재무목표가 정해지지 않거나 가족 간에 합의가 되지 않으면 돈을 벌어도 결국 새어 나가게 되어 있다. 김헌수 차장 부부가 재무관리를 시작하고 3개월쯤 지났을 때 나는 그들에게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예산 범위 안에서 지출하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체크카드이다. 용돈이나 생활비를 체크카드로 사용하면 결제할 때마다 잔고를 알려주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된다. 체크카드의 소득공제 포인트도 신용카드보다 많다. 김헌수 차장 부인은 신용카드를 없애고 체크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용카드를 없애고 나니 물건을 살 때마다 ‘과연 이 물건을 꼭 사야 되는지’ 몇 번씩 고민하게 되었고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준비한 돈만큼 사게 되더라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라도 돈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꾹 참고 돈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처음에는 신용카드가 없어 불안하고 허전했지만, 서서히 차츰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않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수십만 원 하는 ‘비싼 시리즈’ 화장품을 샀을 그녀가 결국 낱개로 싸면서도 좋은 스킨, 로션, 영양크림을 샀다. 예산에 맞춰 나머지는 포기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정말 뭔가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다. 김헌수 차장 부부는 예산 범위 안에서 지출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생활비와 용돈, 외식비 등의 지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윳돈이 필요했다. 재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별로 돈을 저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모을 것인가? 서민들이 원하는 일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중요한 일은 어느 정도 이루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목적별로 통장을 만들어 적금이나 펀드 등으로 돈을 모으는 ‘통장 쪼개기’가 그것이다. ‘통장 쪼개기’는 내 능력으로 꿈을 이뤄가는 ‘마법 통장’이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정하지 않으면 통장을 쪼갤 이유도 찾지 못한다. 모든 통장에는 목적과 행복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 김헌수 차장 가정은 집을 줄이고 보험료 등을 조정해서 생긴 여유자금 53만 원과 생활비를 더 줄이면서 생긴 여유자금을 합한 총 100만 원을 가지고 통장 쪼개기를 했다. 자녀들의 대학자금과 같이 3~5년 내에 필요한 돈은 중기 통장으로, 노후자금은 장기 통장으로 만들기로 했다. 장기 목적일 경우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불입 금액이 적어진다. 김헌수 차장 가정은 월 100만 원의 여윳돈을 가지고 자녀교육자금으로 50만 원, 노후자금으로 40만 원, 가족 여행으로 10만 원씩 통장 쪼개기를 했다.
작년겨울, 김헌수 차장 가정은 ‘여행가는 통장’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통장에 이름과 목표를 적고 매월 10만 원씩 저축한 돈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 기쁨은 새 자동차를 샀을 때보다 더 컸다고 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부인도 돈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매월 잉여자금에서 재무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별로 통장을 만드는 등 통장 쪼개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단기로 통장 쪼개기를 실천하여 기쁨을 맛보면 중∙장기를 위한 통장 쪼개기도 쉽게 할 수 있다. 매월 적은 금액을 저축해서 제주도나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를 여행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3년의 기다림과 설렘이 있기에 더욱 행복하다.
Chapter 4 어떤 경우에도 답은 있다, 우리 안에도 있는 가능성
“돈 없어도 결혼할 수 있다” : 전문대를 졸업하고 작은 IT업체에서 일하는 32세의 김준성 씨는 잇달아 들려오는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황사 소식보다 더 심란하다. 그는 현재 부모님과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고 있다. 130만 원씩 5년 동안 받은 월급은 고스란히 부모님이 친척에게 선 보증빚을 갚느라 단 한 푼도 모으지 못했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다거나 직장이 좋은 것도 아닌데다 부모님은 평생 가난했다. 그는 호감이 가는 여자가 있어도 다가설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 어느 한 구석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2006년 4월에 만난 김준성 씨는 몹시 마르고 예민하고 불안정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첫인상부터 자신감이라곤 없어 보였다. 친구의 권유로 마지못해 그저 50만 원짜리 펀드 하나 가입하려고 왔다는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야기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펀드가 아니라 희망이었다. “제가 결혼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결혼자금과 내 집 마련 자금부터 준비하면 되는 건가요?” 그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준성 씨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뭐 이런 이상한 사람이 다 있어?’라는 듯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저는 당장 방 한 칸 얻을 돈도 없고 월급도 130만 원밖에 안 되는데 누가 저하고 결혼하겠어요?” “나만 믿고 따라와 봐요. 제가 볼 때 당신의 문제는 돈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에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실 창가에 있는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분필을 들고 그의 인생을 풀 준비를 시작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결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3년 이내에 결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나는 칠판에 결혼에 필요한 자금을 적어보았다. 결혼비용은 일단 최소 500만 원으로 정했다. 그 다음은 전세자금으로, 방 한 칸에 4,000만 원 정도로 잡았다. 그는 지금도 좁은 집에 살고 있어서 신혼을 방 한 칸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강점이라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한 달에 50만 원씩 꼬박꼬박 저축해도 3년이면 2,000만 원이 채 안 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결혼비용과 전세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길은 있다.
결혼할 상대가 생기면 먼저 근로복지공단에서 결혼자금으로 500만 원을 대출 받는 것이다. 근로복지 공단 대출은 최대 700만 원까지 가능하다. 월평균 임금이 170만 원 이하인 근로자일 경우 신청이 가능하며 1년 거치 3년 균등분활상환 조건이다. 절대 빚을 지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지만 빚도 지혜롭게 활용하면 경제 활동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대출해 주는 500만 원의 이자는 3.4%로 한 달에 이자가 15,000원 수준이다. 1년이면 185,000원이다.
다음은 전세자금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전세자금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매스컴에 떠도는 정보만 가지고 미리 걱정하고 좌절한다. 이 청년의 전세자금 목표액은 4,000만 원. 매월 50만 원씩 저축하는 돈으로 2,000만 원은 확보되었으니 나머지 2,000만 원만 더 모으면 된다.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면 연 4.5%의 이자로 2,000만 원이 생긴다.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이자는 연 4.5%로 월 75,000원, 1년이면 90만 원이다. 결혼 후 그가 지불해야 하는 이자는 근로복지공단 대출금 500만 원의 이자와 합해 월 9만 원이다. 3년 동안 월급이 오르지 않는다 해도 매월 여윳돈 50만 원에서 9만 원을 내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다. 김준성 씨는 처음으로 웃었다. 그런 뒤 여유자금 50만 원 중 30만 원은 펀드에, 20만 원은 적금을 붓도록 했다. 또 매월 18만 원씩 들어가던 종신보험을 해약하여 4만 원대의 손해보험에 가입하게 하고 차액인 14만 원은 CMA통장에 넣도록 했다. 그는 올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 것이다.
그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김준성 씨는 여자 친구를 만났고 1년 뒤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현재 2,000만 원의 가용 현금이 있다. 매월 30만 원씩 불입하던 펀드는 원금이 900만 원인데 최근 주가 하락으로 820만 원이 남아 10%의 손실을 보기는 했지만 2년 6개월 전부터 불입하던 것이라 손실률이 크지 않은 편이다. 매월 20만 원씩 붓고 있는 적금은 그동안 월급이 매년 10만 원씩 올라 이제는 매월 40만 원으로 금액이 늘어났고 지금까지 총 840만 원이 모였다. 펀드와 적금 그리고 매월 14만 원씩 넣는 CMA통장의 돈을 합해 총 2,000여만 원의 현금이 마련된 것이다. 김준성 씨는 결혼자금과 전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전히 대출이 필요한 상태이지만 이제 준성 씨는 두렵지 않다. 지난 2년 반 동안 준성 씨는 150만 원의 월급 중 거의 80여만 원을 저축했다. 가난한 것을 견딜 수 있는 것도 경쟁력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라던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나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준성 씨는 결혼 이후 내 집 마련, 자녀교육, 노후문제 등 다가올 재무적인 필요를 이러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도 현명하게 준비해나갈 것이다.
“준비된 노후, 자식들이 더 좋아한다” : 재무상담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공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사람, 빌딩이나 상가를 소유하고 있어 임대 소득이 충분한 사람 몇몇을 제외하고는 은퇴 후 문제가 해결된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노후준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현실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자주 밀리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알게 모르게 소외되는 자신의 노후자금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내 노후가 준비되면 자식들이 더 좋아한다.
김 노인은 10년 전에 정년퇴직했다. 자녀 셋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고 그중 두 명은 어학연수까지 보냈다. 자식들이 졸업 후 모두 취직하자 김 노인은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싶어 내심 흐뭇하고 뿌듯했지만 결혼비용이 문제였다. 세 명을 줄줄이 결혼시키자니 퇴직금으로도 모자랐다. 결국 집을 줄이면서 그 차액으로 막내딸을 결혼시켰다. 그렇게 세 자녀를 모두 결혼시키자 김 노인은 비로소 인생의 모든 숙제를 마친 듯했고, 25평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해도 섭섭하지 않았다. 집은 좁아도 아내와 함께 여생을 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정말 해결하지 못한 더 큰 인생의 문제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퇴직 후 3년간은 자식들이 보내 주는 용돈과 경비원 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비원 자리에서 밀려났고 이후 그를 채용해 주는 곳이 없었다. 현재는 3억 원짜리 25평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다. 한 달 수입이라고는 매월 국민연금 40만 원이 고작인데, 그것과 자식들이 주는 불규칙한 용돈을 합해도 최저생계비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김 노인 부부에게 우선 자신들의 생활비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적게 했다. 25평 아파트 유지비, 자동차 유지비를 비롯한 각종 고정비용이 월 130만 원 정도 들었다. 거기다 가끔 의료비 지출이나 친목 경비 등을 합치니 최소 월 150~160만 원이 들어갔다. 나는 김 노인 가정의 생활비로 매월 160만 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다.
1. 주택금융공사의 역모기지론을 신청해서 매월 85만 원씩 받는다. 역모기지론은 부부 모두 65세 이상인 노인을 대상으로 6억 원 이하의 주택을 가입조건으로 한다. 65세에 3억 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연금혜택을 받는다면 매월 85만 원 가량이, 6억 원일 때는 171만 원이 종신토록 지급된다. 김 노인 부부는 여기에 포함된다.
2. 국민연금에서 40만 원씩을 받는다.
3. 나머지 필요한 금액은 가족회의를 통해 세 자녀의 가정에서 최소 50만 원 정도의 도움을 받는다.
부모님의 구체적인 노후자금 계획을 본 후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각각 20만 원씩, 막내딸이 10만 원씩 매월 총 50만 원씩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김 노인 부부는 매월 175만 원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목표 금액인 160만 원보다 많은 15만 원은 김 노인 부부의 여행 경비로 잡았다. 2~3년 후에는 매월 15만 원씩 모아서 국내여행을 가기로 했고 그 후 3~5년을 더 모아서 해외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물론 은퇴 후 생활비로 매월 200만 원 이상은 있어야 보다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지만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만약에 김 노인 부부의 자녀들이 용돈을 50만 원씩 보태주지 않는다면 이 가정은 둘 중 한 명은 일을 해서 보태야 했을 것이다.
“옛날 할아버지 시대에는 노후문제가 심각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노후에 대한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진 겁니까?” 강의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이미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또 10년 전만 해도 은행 예금금리는 17%에 달했지만 지금은 물가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 시대에는 은행에 넣어 두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처였고 노후도 짧았다. 알뜰살뜰 아끼고 저축하면 노후보장이 되었던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노인들은 지나치게 가난하다. 한국 노인의 경제력은 일본과 미국 노인들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국세청 소득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32%는 금융자산은 물론 소득이 한 푼도 없다. 일본은 전체 개인 금융자산의 75%를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은 50세 이상 개인이 전체 금융자산의 77%를 보유하고 있다.
노후준비는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후준비가 적절하게 돼있지 않으면 자식까지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투자했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가 준비되지 않은 부모는 자녀에게 도리어 짐이 된다. 노후준비는 나이와 상관없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현재 나이와 상관없이 수입의 10%는 무조건 노후를 위해서 떼어 놓아야 한다. 급여가 올라가도 수입에 비례해서 10%를 떼어 놓는다. 노후준비는 늦어도 30~40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녀들을 교육시키면서 기본적으로 대학 4년간의 등록금만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어려서부터 자녀들의 자립심을 키울 수 있고 부모들의 노후자금도 일찍부터 확보할 수 있다.
이미 50대로 접어든 사람은 은퇴를 위해 반드시 점검할 사항이 하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노후준비가 안 되었다고 판단되면 지금부터라도 최소한의 생활비로 생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자녀 결혼비용, 어학연수 비용 등 자녀에 대한 투자도 줄여야 한다. 60대는 자녀들을 간신히 대학에 보냈지만 막상 자녀들의 결혼 자금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는 결국 퇴직금을 자녀결혼자금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하다. 퇴직금은 아파트나 상가에 투자해서 월세를 받도록 하거나, 개인연금보험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 목돈으로 가지고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자식들에게 주게 되기 때문이다. 노후준비를 위한 투자 상품은 최대한 장기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후준비는 가능하면 보험사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보험상품도 일시에 목돈으로 받는 것보다 매년 혹은 매월 정기적으로 나눠서 받는 것이 좋다.
Chapter 5 돈 걱정을 없애 주는 든든한 7단계 재무시스템
1단계 월급으로 한 달 산다 : 막연히 모으고 막연히 쓰면 돈은 늘 어딘가로 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한 달 예산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런 상식을 파괴하는 가장 큰 주범은 신용카드이다. 가능하면 한 가정에 신용카드 하나만 남기고 모두 없애도록 하며 모든 지출은 체크카드로 한다. 그렇게 하면 수입 안에서 지출을 하게 된다. 사용하다 정 부족하면 한계를 늘리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를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각 가정의 건강한 재무관리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받은 급여로 그 다음 급여일까지 한 달간 생활하는 것이다.
2단계 내가 얼마 쓰는지 알고 쓴다 : 가정경제 개선을 위한 문제를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얼마나 돈을 쓰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매월 지출을 파악하려면 가계부를 적어야한다. 가계부 항목은 나와 우리 가족이 쉽게 구분할 수 있는 항목으로 크게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처음 가계부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세부적인 항목으로 나눌지 아니면 큰 항목으로 나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다음 급여일까지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자금과 여유자금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추어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3단계 통장 쪼개기로 꼭 필요한 목돈 만든다 : 통장 쪼개기는 재무목표에 따라 통장을 만들고 목표금액과 기간에 따라 적금을 들거나 펀드 등에 투자를 하여 돈을 모으는 것이다. 단기∙중기∙장기 재무목표별로 통장 쪼개기를 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우선 통장 쪼개기를 할 때 모든 가정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해당 연령별로 다른 비율로 통장을 쪼갠다. 미혼일 경우 단기 : 중기 : 장기의 비율은 7 : 2 : 1로, 30대(신혼~초등학생 자녀)인 경우는 2 : 6 : 2로, 그리고 40대(중 고등학생 자녀)의 경우에는 3 : 4 : 3이 적당하다. 미혼인 경우 결혼자금과 전세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단기 자금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좋고, 30대의 경우 내 집 마련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기간을 5~10년으로 잡고 중기 자금에 더 집중하는 것이 좋다. 40대는 노후자금보다 자녀교육자금을 준비하고 싶어 하지만 자녀들에게 교육자금을 주지 않았을 때 생기는 위험보다 노후를 준비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위험이 더 크므로 노후자금비율(장기) 30%를 지키도록 한다.
4단계 수시로 들어가는 돈, 따로 떼 놓는다 : 명절, 여름휴가, 부모님 생신, 경조사 등의 비정기지출과 불안감으로 인해 저축을 못한다면 비정기지출과 예비비를 1년 예산으로 잡으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1년간의 비정기지출 예산이 정해지면 이를 위한 통장을 따로 만들어 이 통장에서 사용하면 되는데, 이 때 통장은 CMA로 하도록 한다. 즉 형편에 맞게 300만 원이나 500만 원을 비정기지출 통장에 넣어 두고 사용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매월 급여에서 남는 돈은 모두 저축할 수 있게 된다.
5단계 월급날, 급여통장 0원으로 만든다 : 1~4단계를 통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후결제 시스템’을 애용했던 생활 패턴을 현금만 사용하는 ‘선결제 시스템’으로 바꾸고 소비성지출 항목을 정리해 누수자금을 없앤다. 그리고 재무목표별로 통장 쪼개기를 하고 1년간의 비정기지출 항목도 꼼꼼히 따져 예산도 세워 놓았다. 이제부터는 이 예산을 집행하여 월급통장을 ‘0원’으로 만들자. 한 달 동안 사용할 금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월급날 통장에 돈이 들어와도 이 통장, 저 통장으로 자동이체하고 나면 통장 잔고는 0원이 된다. 통장 잔고를 0원으로 만드는 훈련은 가정경제 회복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번거롭지만 이렇게 한 번만 해놓으면 다음부터는 굳이 따로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재무목표를 이루어 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앉아 있게 되는 것이다.
6단계 5단계까지 매월 점검한다 : 굳은 다짐을 하고 시작을 하지만 처음에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이 몹시 힘이 든다. 문제는 그렇게 힘들다고 흐지부지 하느냐, 계속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 부부가 서로 정해진 금액보다 더 지출을 하더라도 이해해 주되, 정해진 금액 안에서 살도록 쉬지 않고 노력하다보면 오래지 않아 돈 걱정 없는 재무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이다.
7단계 지금 당장 시작한다! : 재무시스템 7단계는 누구나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이 시스템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당장 매일, 매월, 매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현재 재무상황이 어떠하든 당장 시작해 보라. 이 시스템대로만 살면 가정이 회복되고 돈 걱정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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