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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 (도서요약)

by 홍승환 2008. 11. 10.

 

세상에 없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

 

 

트렌드를 만들어 간다

 

자기다움의 표출

1886년 포목점으로 출발했던 이세탄 백화점의 슬로건은 매일이 새로운 패션의 이세탄이다. 이세탄 백화점의 패션이란 의식주를 총망라한 신선한 감성을 뜻한다. 이세탄은 고객들이 이러한 감성을 매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기를 원했다. 이세탄 백화점이 바라본 패션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패션=공기와 감성을 의미한다. 창업초기부터 내려온 이세탄 백화점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세탄 백화점만의 자기다움을 형성하고 있다.

 

이세탄 백화점은 메이지도오리와 신주쿠도오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길모퉁이에 우뚝 선 채 너무 튀는 것도 아니요, 주위 건물에 파묻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곳에서는 분명 이세탄 백화점다운 무언가가 존재한다. 이세탄 백화점 신주쿠 본점은 1933년 9월에 오픈했다. 수직방향의 능선을 강조한 석조건물은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깊은 백화점으로서 그 품격이 느껴진다. 현란한 간판이나 휘황찬란한 장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세탄 백화점은 화려하다기보다 수수한 느낌이 드는 백화점이라 할 수 있다.

 

옛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취지 아래 대규모 상업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도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외관을 지키려 애쓰는 미쓰코시 백화점과 다카시마야의 모습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백화점으로서의 정통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면서 시대 분위기에 맞는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 나아갈 것인가? 백화점이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과제는 이제 양날의 검과 같아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니혼바시에 위치한 미쓰코시 백화점과 다카시마야는 2004년에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두 곳 모두 오랜 전통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백화점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다움의 표출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오랫동안 변함없이 찾아주었던 고객을 유지하면서 새로움을 창출해내고 그 결과를 가시적인 성과로 이끌어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달리 이세탄 백화점은 건물의 수수한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시즌에 따라 바뀌는 이미지 포스터가 떠오른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아리따운 여성복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미지 포스터는 백화점의 얼굴이다. 그만큼 모든 백화점은 자기다움을 표출하기 위해 이미지 포스터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도쿄 번화가에 넘쳐나는 수많은 이미지 포스터. 그중에서도 나는 이세탄 백화점의 이미지 포스터를 걸으면서 바라보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굳이 걸으면서라고 표현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다. 마치 카탈로그의 한 장면처럼 신상품을 입은 모델을 통해 유행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여성의 자기다움을 표출하려는 이세탄 백화점만의 독특한 개성과 자세가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그 시즌의 여성은 어떤 모습을 추구하고 있는지, 거창하게 말하자면 시대와 여성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가만히 서서 보는 것보다는 걸으면서 보는 편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대 분위기를 여성의 패션을 통해 전해 온 이세탄 백화점의 이미지 포스터에는 분명 이세탄 백화점만의 독창성이 숨어 있다. 품격 있는 외관과 여성을 위한 패션 제안, 내가 생각하는 이세탄 백화점의 이미지는 이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세탄 백화점은 오래된 백화점의 낡고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품격 있는 고급스러움으로 끌어올리고, 유행에 따라 변화하는 패션을 끊임없이 제안할 수 있는 파워를 갖추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세탄 백화점의 자기다운 모습일 것이다.

 

매장이 아니라 거리를 만들자

1985년 백화점으로서는 처음으로 당시 많은 인기를 모으던 DC(Designer & Character) 브랜드로만 구성된 신데렐라 시티를 백화점 2층에 오픈했다. 새롭게 생긴 신데렐라 시티는 좁은 통로 양쪽에 자그마한 부티크가 쭉 늘어서 있어 마치 하라주쿠의 패션 거리를 걷는 듯한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었다. 매장 중앙에는 의류 상품뿐만 아니라 핸드백과 구두, 액세서리 등을 늘어놓은 자주편집형 매장(백화점이 독자적으로 여러 브랜드를 골라 만든 매장)을 마련하여 의류 상품만이 아니라 패션잡화를 적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당시 고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신데렐라 시티는 구두와 핸드백 등 의복 관련 잡화는 백화점 1층에 위치한다는 상식을 깨뜨리는 새로운 도전이었으며 상품을 그저 한 곳에 모아둔 것이 아니라 당시 고객들의 욕구와 시대 유행을 잘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코너 한 모퉁이에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를 마련한 것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의류 상품뿐만 아니라 패션 잡화와 카페가 함께 있음으로써 매장에 활기가 넘치고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즉 백화점 안의 조용한 찻집처럼 편하지만 시대에 뒤쳐진 분위기가 아니라 패스트푸드 체인점처럼 활기가 넘치고 밝고 젊은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영업본부 MD 통괄부 여성복 제1영업 부장인 유타니 신지는 새로운 시도에 과감히 도전했다. 바닥에 맨홀을 그려 넣어 플로어를 거리처럼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백화점 안에 거리를 만든다는 새로운 발상에 도전했던 당시 상황을 야채가게나 정육점이 있어도 좋았을 텐데라며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이처럼 신데렐라 시티는 마치 장난감 상자를 엎어놓은 듯한, 곳곳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이러한 새로운 시도의 이면에는 젊은 층에 대한 상품구색 재편이라는 이세탄 백화점의 과제가 존재했다. 서서히 백화점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젊은 여성들을 다시 불러모으기 위해 근본적인 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이세탄 백화점은 (Young)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켰던 종래의 고객층을 보다 젊은 감성의 깔끔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고객층, 즉 퓨어 영(Pure Young)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16~22세를 그 중심 타깃으로 정하고 그녀들의 일상생활을 반영한 새로운 매장을 만든 것이었다. 이들 퓨어 영 고객층은 바나나 세대(1965~1970년 출생)라 불리며, 고등학생 시절부터 《올리브》 등의 패션잡지에 나온 스타일을 따라하고 시부야와 하라주쿠에서 DC브랜드를 자주 애용했던 세대다. 그리고 이들은 백화점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을 찾을 수 없다. 백화점보다 길거리 부티크를 둘러보는 편이 훨씬 즐겁다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의 젊은 여성을 사로잡기 위해 만든 신데렐라 시티는 결과적으로 하라주쿠에 있는 부티크에서는 엄마와 함께 쇼핑할 수 없지만, 이세탄 백화점이라면 엄마도 안심할 거야라고 생각한 모녀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매장을 만든다는 발상에서 거리를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이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효과를 이뤄낸 것이다. 여성복 제1영업부장인 유타니 신지는 항상 새로운 매장을 창조해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세탄 백화점의 DNA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세탄 백화점 관계자들은 취재하는 동안 이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가이호쿠(解放區), 패션 디자이너를 육성하다

 

백화점의 얼굴

1990년대 초반 당시 백화점들은 너도나도 명품 브랜드를 들어오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특히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가 인기를 모으는 가운데 1층 플로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커다란 명품 부티크를 입점시키기 시작했다. 당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브랜드 매장이 있으니까     백화점에 간다는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긴자에 있는 명품 브랜드 본점은 건물 자체가 너무 으리으리한 나머지 왠지 들어가기 어려운 데 반해, 백화점 1층 플로어는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소비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명품 브랜드를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백화점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백화점은 점차 1980년대에 그토록 강조했던 자기다움을 잃어갔다. 백화점의 동질화가 서서히 진행되었던 것이다. 1층 플로어에 명품 브랜드 부티크가 마치 백화점의 얼굴처럼 의젓하게 자리잡게 되었고, 여성복 플로어는 어느 백화점을 가든 비슷비슷한 브랜드뿐이었다. 마치 패션빌딩처럼 여러 부티크를 모아둔 매장 구성이 어느 틈엔가 백화점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992년에는 백화점 매출액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전년도 매출액을 밑돌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 부흥기부터 고도 경제성장기를 거쳐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던 백화점 매출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은 백화점 업계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소비자들도 불경기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따라 백화점의 동질화는 백화점업계가 해결해야 할 중장기적인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미래를 위해 백화점들이 자기다움을 발견해야 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에게 선사해야 할 즐거움과 새로움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세탄 백화점은 다른 백화점과 사뭇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3년 당시 패션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아페세를 1층에 입점시켰다. 아페세는 아니에스 베에 있던 디자이너가 새롭게 론칭한, 베이직한 스타일의 소재와 실루엣을 중시하는 브랜드였다. 콘셉트 또한 거품경제 시대에 한창 유행하던 화려한 의류상품과 전혀 다른 미니멀한 이미지였다. 당시 아페세를 입점시키길 원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머천다이저인 후지마키 유키오였다. 그는 정체기에 빠져 있었던 1층 플로어에 신선함을 불어넣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명도가 낮은 브랜드를 1층 플로어, 즉 백화점의 특등석에 해당하는 곳에 입점시킨다는 것은 무명브랜드를 부화시키는, 다시 말해 새롭게 탄생시키는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대해 회사에서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후지마키 유키오의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열의를 갖고 주위 사람들을 열심히 설득한 결과였다.

 

이러한 후지마키 유키오의 활약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세탄 백화점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비록 지명도는 낮을지라도 시대를 앞서는 브랜드를 이세탄 백화점에서는 부화시켜 나간다. 이는 이세탄 백화점이 디자이너를 판별하는 감정사임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힘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했다. 그러나 나는 아파세 입점에 또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당시 이세탄 백화점은 하나코 세대를 포함한 수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미래의 주고객층이 될 제2차 베이비붐 세대를 사로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2차 베이비붐 세대의 여성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신선함과 젊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이세탄 백화점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장치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즉 후지마키 유키오가 기획한 아페세 입점은 새로운 디자이너와 고객을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였던 것이다.

 

55% 공격론

많은 기업들이 과감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은 종래의 연장선상에 서서 현상을 유지하는 편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전례가 없으니까, 상사의 승낙을 받기가 어려우니까 등의 이유로 과감한 제안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돼 버리는 경우를 나는 수없이 목격했다. 그래서인지 과감하게 도전한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기업이 전하려 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저절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새로운 도전이 모두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행 이전의 단계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고, 시작 초기 단계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지만 일시적인 인기로 인해 앞으로 유지해나갈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철수되는 매장도 많다.

 

당시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23개월이나 전년대비 매출액을 밑도는 상황에서 새로운 것과 과감히 도전하는 백화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세탄 백화점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도전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1994년 2월에 1층 플로어의 프로모션 스페이스였던 스테이지에 가이호쿠(解放區)를 새롭게 선보인 것이다. 이세탄 백화점에는 사내에서만 통용되는 재미있는 공용어가 있다. 55% 공격론이 그것인데, 니하시 치히로가 그 의미에 대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다. 새로운 것을 제안할 때 50%의 가능성이 있다면 상사에게 상담하고, 55%의 가능성이 있다면 스스로 판단한 후 용기를 갖고 실행에 옮긴다. 단, 나머지 45%는 스스로 노력하며 채워나가 100%로 만들어야 한다. 보수적인 백화점 업계를 감안해 볼 때 55%라는 숫자는 뛰어넘기 힘든, 높은 장애물은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방어적인 자세보다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며 자신이 기획한 안건은 스스로 성공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의미이다.

 

55% 공격론에는 자유와 책임, 창의와 노력, 도전과 지속 등 기업이 활력을 잃지 않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 사원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가 응축되어 있다. 가이호쿠는 신인 패션 디자이너의 상품을 모아 하나의 매장인 것처럼 꾸민 실험적인 시도였다. 대형 백화점이 신인 디자이너들의 상품을 한 곳에 모아 매장을 만든다는 것은 1980년대 중방 세부 백화점의 시부야 지점이 시도했던 레드존 이후 처음이었다.

 

BPQC,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자

 

백화점, 라이프스타일 제안의 최적의 장소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것은 간단할 것 같지만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다양한 상품과 매장들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을 내세우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는지, 또는 어떤 상황을 가정하여 개발한 것인지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매장과 상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매장 측의 기획의도를 들여다보면 그렇군, 하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매장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반 소비자에게 매장 측의 의도가 전해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고객이 자신의 시각을 통해 또는 그 매장에 있음으로써 명확히 그 의도를 느낄 수 없다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은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라이프스타일이 명확하게 느껴지는 상점과 매장, 그렇지 못한 상점과 매장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존재할까? 나는 상점과 매장이 실생활에 필요한 상품을 제안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이 직접 사용할 장소를 구체적으로 재현하듯 상점 내부를 꾸몄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분야 등이 대형 제조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상품을 개발하다 보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겉을 포장하기 위한 다자인에 그치고 마는, 다시 말해 상품이 먼저고 나중에서야 라이프스타일이니 생활제안이니 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을 갖다 붙이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봐 왔다. 이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 발상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라이프스타일을 느낄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상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스타일의 식기를 쓰는 사람이 이런 옷을 고를 리가 없어, 이런 스타일의 컴퓨터 책상을 둔방에 저런 쿠션이 놓일 리가 없어 등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상점이 일관성이 결여돼 있는 이유는 상점과 상품, 고객을 별개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백화점이야말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생각해왔다. 백화점은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곳이어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상품이 갖춰져 있고, 머천다이저가 하나의 콘셉트에 맞춰 여러 매장의 상품을 모아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굳이 공간이 크지 않더라도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장소만 있다면 고객들은 백화점에 가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보통 백화점은 구두와 핸드백, 의류 관련 액세서리, 여성복, 신사복, 생활 잡화 등 취급품목에 따라 플로어가 나뉘어져 있다. 따라서 각 품목에 따라 담당부서도 다르며 각 부서별로 매입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아이템을 골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는 매장을 만들려면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수직구조 시스템의 벽을 깨뜨려야 한다. 당연히 기존의 수직구조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조직상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설령 과감한 시스템 개혁이 이루어진다 해도, 개혁 초기에는 매출액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 머천다이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며 뛰어난 머천다이저를 육성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에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백화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도전한다 해도 생각만큼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철수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관점을 활용하자

2000년 3월, 이세탄 백화점은 지하 2층 플로어 전체에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매장 BPQC를 오픈했다. BPQC란 Bon Prix(품질과 가격이 균형 잡힌 적정 가격), Bon Qualite(믿을 만한 품질), Bon Chic(수준 높은 센스)의 약어이다. BPQC는 상품구성뿐 아니라 매장을 담당하는 머천다이저 4명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코즈메틱과 의류상품, 가정용품, 잡화 등 4개의 분야를 4명의 여성 머천다이저가 담당하고 있다. 4명의 머천다이저가 회의를 반복하고 BPQC로서의 테마를 공유하면서 각 분야의 상품에 적용시킨다. 모든 분야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각 머천다이저가 동일한 테마에 관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은 기업의 큰 강점이다. 이러한 과정이 제대로 기능하게 된다면 플로어 전체가 고객에게 명확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최근 들어 여성의 관점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만큼 여성의 관점에서 만든 상품 또는 매장이 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러 업계의 사람들과 만나 일을 하다 보면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상품과 매장 등을 기획하는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아 놀라기도 한다. 아직도 상품과 매장을 개발하는 현장은 남성중심이다. 실제 이용고객의 감각, 즉 여성의 관점을 전혀 모르는 남성들이 현장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상품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실제 이용고객의 입장에서 제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2004년 나는 우연찮게 G마크라 불리는 굿디자인상의 심사위원을 맡은 적이 있었다. 건축 분야에서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심사 대상 품목은 몇 천 점에 달했다. 각 업계로부터 68명의 심사위원이 위촉되었는데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물론 내가 디자인에 관해 아마추어나 다름없기 때문에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고객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결코 낮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성 심사위원을 좀 더 늘려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소비자로서의 여성은 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성을 타깃으로 한 상품과 서비스 분야는 미래의 시장으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 만큼 좀 더 색다른 측면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다각적으로 여성 고객을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ISETAN MENS 센스 있는 남성을 사로잡자

 

1987년의 남성 신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패션은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이끌어 왔다. 남성은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의식이 전쟁 중,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뿌리 깊이 남게 되었다. 또한 전쟁을 겪은 거의 모든 세대는 패션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전후 베이비붐 세대만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영 패션을 탄생시켰으며, 이 세대에는 젊었을 때 패션에 민감했던 남성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1950년대 말 무렵 미국에서 들어온 청바지를 거의 모든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착용하면서 유행하게 되었고, 이로써 패션의 한 획을 긋게 되었다. 또한 1960년대의 미니스커트 붐을 일으킨 것도 이 세대였다. 이들은 남녀평등교육을 받은 세대로, 남녀 모두가 새로운 유행을 탄생시켰으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해 냈다.

 

또한 1960년대 중반에는 공작새는 암컷보다 수컷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는 사실에서 유래되어, 세련되고 화려한 남성을 일컫는 피콕 혁명이라는 말까지 유행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남성 셔츠는 흰색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들 전후 베이비붐 세대부터는 핑크와 블루, 옐로우, 체크 등의 화려한 색상과 무늬가 등장했다. 또한 정장과 넥타이를 코디하는데 포인트가 되는 셔츠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를 주도한 세대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와 그 윗세대의 일부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이들 중 몇몇은 버튼다운 셔츠에 사선 줄무늬의 레지멘탈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맨다. 세세한 부분까지 민감한 이들의 모습은 단정해 보인다. 또한 이들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는 결혼한 이후 친구 같은 부부라 불리는 커플룩을 유행시켰다.

 

이세탄 백화점은 1968년 9월, 본관 옆에 면적 8천 제곱미터 규모의 남성 신관을 오픈했다. 당시에는 이세탄 백화점처럼 별관을 지어 남성관련 상품을 대대적으로 광고했던 곳은 거의 없었다. 이세탄 백화점이 처음이었으며, 세계적으로도 몇 곳 없었던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실험이었다. 당시 매장구성을 위한 기본 전략은

 

기성복을 중심으로 30~40대 남성을 주고객층으로 삼는다.

젊은 층도 주요고객으로 삼는다.

레저 관련 매장을 크게 부각시킨다.

 

당시 매장은 레블론 화장품 코너를 3층의 특선 잡화 멘스 부티크(Mens Boutique)와 함께 마련하는 흥미로운 구성을 취했다. 요즘 백화점에는 남성 관련 에스세틱이나 멘스 코즈메틱 매장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시 남성 신관에 화장품 매장을 신설한다는 것은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다. 또한 5층은 음악 플로어로서 레코드와 악기, 소니 제품 코너를 마련했고 비즈니스 사무용품도 판매했다. 7층은 허비 스트리트로 각종 취미용품이나 가정용 공구 코너 등이 있었다. 남성 신관의 새로운 플로어 구성과 상품에는 지금의 남성 매장에 충분히 적용시킬 수 있을 정도의 수많은 아이디어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례가 없었던 만큼, 업계 내에서는 시기상조가 아니냐, 남성들이 과연 패션에 돈을 쓰겠느냐 등의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세탄 백화점의 남성 신관은 이러한 우려를 뒤엎고 앞서 언급했던, 패션을 사랑하는 젊은이들과 비즈니스맨들의 지지를 얻으며 오픈 3년 후인 1971년에 신관 전체 매출 150억 엔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와 같이 이세탄 백화점의 새로운 도전은 남성 관련 분야에서도 새로운 토대를 만들어냈다.

 

이세탄의 정신

 

활기와 즐거움

이세탄 백화점이 이뤄낸 새로운 도전 중 다른 예를 살펴보자. 이세탄 백화점은 2004년부터 1층 액세서리 매장의 브랜드 간판을 없애고 매장 집기를 통일시켰다. 고급스러운 다크 브라운을 기본컬러로 유리 재질의 매장 집기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은 백화점 1층 플로어라기보다 마치 우아한 쥬얼리 전문점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 매장은 진열 케이스 선반이나 벽에 걸어두었던 브랜드 간판을 없애고 진열 케이스 안쪽에만 브랜드명을 제시하였다. 디스플레이할 상품의 개수나 진열방법도 이세탄 백화점이 직접 지시하고 파견 점원의 유니폼도 검정색 재킷에 바지로 통일했다. 멘스관을 모델로 이루어진 변화여서일까? 액세서리 매장의 평균 객단가는 약 30%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이세탄 백화점은 액세서리 관련 매장 전체에 이 같은 시도를 적용하고 핸드백과 구두 등 1층 복식 잡화 매장 전체로 확대시켜 나가려 했다. 물론 이 같은 액세서리 매장은 상품 브랜드명이 부각되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 중심이 아니라 이세탄 백화점이 독자적으로 편집한 매장이라는 메시지가 뚜렷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매장이 지나칠 정도로 질서정연하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즐거움과 활기를 느낄 수 없다. 통일감이 복식 잡화 매장 전체에 적용된다면 깔끔해 보이기는 하겠지만 매장이 단조로워지는 것은 아닌지, 쇼핑하기에 편해도 재미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든다. 고객이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백화점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고객은 상품만 둘러보기 위해 백화점에 오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 쇼윈도의 디스플레이를 둘러보거나 개성 넘치는 다양한 매장을 구경하며 행복감에 젖기 위해서도 백화점을 찾는다. 따라서 이세탄 백화점이 독자적으로 편집했다는 메시지를 멘스관과 다른 형태로 고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고객에게 새로운 이세탄 백화점의 개성을 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한다.

 

실패해도 도전하는 정신

이세탄 백화점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라진 매장이 수없이 많다. 니하시 치히로(영업진행임원 영업부 MD 통괄부장)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분석하고 과제를 명확하게 인식한 후 다음 도전에 활용할 것. 두 손 놓고 아무 일도 시도해보지 않고서 그저 안 됐다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니하시 치히로의 말이야말로 이세탄 백화점의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세탄 백화점 안에서 꼴찌 인재란 아무 제안도 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불언불실행의 사원이라고 한다. 이는 당연한 일 같지만 실로 어려운 인재교육 중 하나다. 이와 같이 자유와 엄격함의 균형이 이세탄 백화점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세탄 백화점의 사원들은 열정적이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하고 신중한 자세로 업무에 임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재능이 없는 자신이 분하기 때문에 노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세탄 백화점의 정신이다.

-다시로 도시아키-

 

엄격하기 때문에 반항정신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꼭 해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리다 도모코-

 

이세탄 백화점의 2대 사장인 고스케 탄지는 우수한 인재라고 생각되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지시했고 끊임없이 신입사원의 재능을 발굴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정신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와 책임의 균형이다. 즉 자신이 시작한 일에는 그만큼의 재량권이 주어지지만, 막대한 책임 또한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의욕이 넘치는 사람일수록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사비를 들여 해외출장을 다녀오거나 리서치를 하고, 휴일에도 다른 상점을 둘러본다. 밤늦도록 잔업을 마다하지 않는다. 뚜렷한 동기가 없으면 오래 지속해 나갈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나가모리 다쓰아키는 이세탄 백화점의 장점은 대표가 장기적인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이를 착실하게 하부 조직에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사업에 대한 면밀한 계획성과 사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나가모리 다쓰아키가 언급한 이세탄 백화점의 면밀한 계획성은 시즌 MD를 구축할 때마다 최고경영진에서 현장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계획을 세우고 검증을 거친 후 실행에 옮기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나도 예전에 이세탄 백화점의 기획서를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꽤 많은 양의 기획서였는데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