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삼국지를 읽느라 독서 삼매경에 빠진 적이 많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읽어도 재미가 있었다. 영웅도 많이 나오고 용장도 많이 나왔다. 대부분 사람들은 제갈량이나 관우를 좋아하는데 처음부터 달랐다. 용장 가운데 조자룡, 그리고 일찍 죽은 방통이 좋았다.
와룡 선생이 유비에게 말하기를 봉룡과 봉추를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봉룡인 제갈량을 유비는 삼고초려로 얻었지만 봉추는 알지 못했다. 봉추를 알아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제갈량도 몰랐다. 그런 봉추를 알아 본 사람은 바로 장비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가운데 난폭성으로 말하자면 둘째가면 서러울 장비가 아닌가. 그런 장비가 봉추를 알아봤다. 유비가 형주성에 있을 때 일이다. 민원이 들어왔다. 어느 고을에 관리가 하나 있는데 허구한 날 일은 안하고 술만 마시고 잠만 잔다는 원성이었다. 장비는 그 얘기를 듣고 죽이겠다고 성큼 나섰다. 그런 그를 제갈량이 보냈다. 민원을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장비는 올커니 하고 금새 그 곳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관리라는 놈이 하나 있는데 잠만 자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얼굴은 새까맣고 자기 못지 않게 험하게 생겼다. 장비는 그를 깨워 1주일 정도 분량의 일을 내일 아침까지 해보라고 시켰다. 죽이려고 해도 명분이 필요했다. 장비는 그 일을 못해오면 죽일 심산이었다.
다음날 아침 장비는 기세등등해서 그를 찾았다. 그런데 그놈이 또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장비는 쳐 죽여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를 깨웠더니 일을 다했다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장비는 놀라 그에게 예를 갖추었다. 천하의 장비가 말이다.
바로 그가 방통이다. 적벽대전을 연환계와 반간계로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 장비는 그를 유비에게 데려갔고 제갈량도 그제서야 그를 알아봤다. 봉추 방통이 바로 그 였다. 방통은 죽을 때도 유비를 대신해 천리마를 타고 가다 죽었다. 그 만큼 유비에게는 최고의 지략가로 충신으로 남았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용맹성과 지혜로운 지략가들이 나온다. 그렇다면 실제 영웅은 누구였을까. 바로 조조였다. 하지만 삼국지는 복한의 개념에서 쓰여졌다. 그래서 유비가 주인공이고 영웅이다. 조조는 간웅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새심하게 살펴보면 조조의 곁에는 훌륭한 장수와 지략가, 충신이 유비쪽 보다 훨씬 더 많다. 천하를 통일한 것도 조조의 아들 조비였다. 지금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영웅을 다른 관점에서 본다. 삼국지에서는 홍건적을 도적떼 무리로 묘사하지만 지금 중국은 홍건적의 최고 수령을 영웅으로 본다고 한다.
어떤 이는 촉나라가 절대 통일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로 비옥하지 못한 토지와 험한 산만 있었다는 것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아무튼 삼국지 하나를 놓고도 각각 해석과 관점의 차이를 지닌다. 그 만큼 각각 처한 위치와 환경에 따라 또 시대성에 따라 다르다.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보다는 논리인 것이다.
역사는 변화한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 때를 지금 옹호하지는 않는다. 일제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이들을 친일파로 보고 청산하자고 한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이를 그냥 넘기자고 한다. 그 때는 다 그런 것인데 꼭 지금에 와서 청산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좋은 얘기다.
그런데 달리 입장을 바꿔서 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출신 성분을 떠나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 입장에서 보면 친일파는 일본놈보다 더 나쁜 놈이다. 같은 민족을 일본놈보다 더 괴롭히고 죽이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거기다 자신의 처지와 입장을 돌이켜 보지 않고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나라도 죽이고 같은 백성도 죽였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여러가지 갈등과 사회적인 현상 속에서 혼란스러워 할 때가 많다. 하지만 한 가지만 명확하게 기억하자. 우리가 족벌 언론 사주도 아니고 누구처럼 대기업 총수도 아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입장과 처지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 같은 민초가 대기업 총수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것 만큼 꼴불견이 없을 것이다.
민초는 민초다워야 하고 민초스러워야 한다. 민초가 왕족처럼 생각하고 민초를 괴롭히는 일에 가담한다면 그것처럼 꼴스러운 일이 없는 게 아닌가.
삼국지에서처럼 모든 사물을 보는 관점의 차이가 곧 스스로의 주체를 인식하고 변화하는데 기초가 될 것이다. 줏대도 없는 양비론자나 일제 앞잡이처럼 가진자의 편에 서서 가난한 자를 괴롭힐 수는 없지 않는가. 비겁하게 말이다.
2005-10-18 오후 8:50:08 http://blog.itimes.co.kr/kgh에 실림. |
출처 : 진실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들의 공간
글쓴이 : 아메바와 야누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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