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의 관점에서 삼국지를 재해석 개인의 성품과 식견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어쩌면 그 해석이 가장 다양한 역사가 바로 "위, 촉, 오" 삼국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무척 친근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자체가 진짜 역사에 대한 그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관중은 특히 승자인 조조에게는 인색했고 훌륭한 인격자였지만 결국은 패배자가 되고 만 유비에게는 관대했다.
삼국지 자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해석에 대해서
승자인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북위 정통론', 조조를 비하하고 유비를 미화하는 '촉한 정통론' 등으로 구분하여
같은 삼국지라도 판본에 따라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를 가려내는 연구를 하고 있을 정도이다. 조조, 유비, 손권은 현대의 경영자에 빗대어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고, 인물들을 평가하여 현대인, 특히 경영자에게 주는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기업의 그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참신한 기운이 충만하고 도전정신과 창조성이 넘치지만 차츰 오래될수록 지도층이 타락과 무사안일에 빠져 든다.
군주의 역할이 핵심적이어서 그 그릇과 운에 따라 왕조의 부침이 결정 된다." 라고
조조, 유비, 손권의 역할과 오늘날 대기업 CEO의 역할이 거의 같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저자는 역시 최후의 승자가 된 조조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흔히 조조는 교활하고, 냉혹한 인물로 묘사되고 그래서 욕을 먹는 경우가 많지만 저자는 조조의 그런 면을 이렇게 편들어 주고 있다. 권력은 물론 목숨까지 잃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조직 문화에 안 맞는 부하를 자를 기회를 놓치고 큰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업을 위해선 사적인 인정은 버리고 더러는 과단성과 비정함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평소 아무리 착하고 아랫사람에게 잘해 줘도 결단의 시기를 놓쳐 기업을 도산으로 몰고 가면 그 경영자는 악인이 되고 만다.
평소 크고 작은 인정을 베풀기보다 기업의 유지 발전이라는 큰 줄기를 키우는 것이 경영자의 책무이고 가장 큰 선행이기 때문이다. 발전시키고 후계자에게 물려주어
2대, 3대까지 번창할 수 있는 토대를 당대에 만든다는 것은 보통사람의 운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의 운과 역량에 따라 기반과 영역을 잡아 가고,
때를 잘 만나 좋은 터를 잡고 좋은 사람을 모아 잘 쓴 사람은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멸망하며,
소위 천시, 지리, 인화의 삼박자가 맞아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조, 유비, 손권 이 세 사람은 다른 인물들보다 이 세 요소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갖추어
천하를 다투는 삼국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이다.
조조와 유비 중에 누가 더 훌륭하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들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것이 벤치마킹의 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조조편, 유비편, 손권편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조조는 비교적 유복한 집안을 토대로 당대에 창업하여 사업을 키우고 훌륭한 통치 시스템까지 후손에게 물려 준 성공한 CEO로,
유비는 시골의 궁벽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불가사의한 인간적 매력과 통 큰 리더십으로
영웅의 반열에 올랐으나 실세의 불리와 말년의 방심과 고집으로 결국 실패한 CEO로,
손권은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사업을 부친과 형님에게 물려받은 2세이지만 3대이면서 수성에 성공하고 사업을 더욱 발전시켰으나
말년에 총명이 흐려지고 신하들을 의심하면서 승계에는 실패한 CEO로 묘사되고 있다.
흔히 유비와 조조가 많은 주목을 받아 온 것이 사실인데 손권을 승계형 경영자에 빗대어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인 즉 사람을 얻고, 감동시키고, 활용하는 재주에 많은 비중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유비나 손권의 인사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지만 특히 조조의 실용적이며 현대적인 인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높은 평가를 하고 있다. 또 물질적 보상을 마련해주는 현대적 관리 기법을 일찍부터 썼던 것이다.
조조는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잘 쓸 줄 알았다. 사람의 능력과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신상필벌이 엄한 대신 인재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매우 관대한 면이 있었다.
조조 밑에 사람이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사람을 찾아 나섰다.
조조의
구현령의 내용을 보면 "현인을 발견하려면 윗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현인은 우연히 만나는 게 아니다.
청렴하고 결백한 선비가 아니면 안 된다느니 하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간 언제 현인을 찾을 것인가.
지금 큰 재주를 지녔지만 한가하게 낚시나 하고 있는 강태공이나
형수와 관계를 가졌느니 뇌물을 받았느니 하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고조의 일등 공신이 된 진평 같은 인재가 어딘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초야에 있는 사람을 찾아내라. 오직 능력만으로 천거하라.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을 중용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덩샤오핑의 실용주의적
명분 위주의 기업이나 유능한 인재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조조 진영에는 별별 재주를 가진 다양한 인재들이 다 모여 있었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모범생이 아니더라도 특이한 재주를 가진 사람을 잘 알아보고 적시에 잘 활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부하들이 타고난 재주를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경력을 관리해 주고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경쟁의식을 불어 넣는 재주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기업 중에는 삼성이 인재를 잘 키우는 곳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저자는 삼성의 창업주인 선대 회장의 다음과 같은 술회를 통해
CEO가 인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키우느냐 하는 것이 국가와 기업의 발전에 결정적인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데 시간을 보냈다. 내가 키운 인재들이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업적을 쌓는 것을 볼 때 고맙고, 반갑고, 아름다워 보인다. 삼성은 인재의 보고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나에게 이 이상 즐거운 것은 없다."
유비는 분석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유비에 대한 저자의 표현을 몇 구절 인용해 보자. "유비를 한번 보면 대개 그의 인품에 반한다.
유비가 그토록 궁핍하게 지낼 때도 천하의 인재들이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여러 군웅들 사이를 떠돌며 필요에 따라 배신도 했지만 늘 점잖고 훌륭한 사람으로 대접 받았다.",
"개성이 독특한 이들을 잘 달래 조화를 이루고 상승에너지를 내게 하는 유비의 능력은 가히 천재적이다.
타고난 리더십이요, 인간적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조조는 천시(天時)를, 손권은 지리(地利)를, 유비는 인화(人和)를 얻었다고 말한다.
유비는 아무 가진 것 없이 인재를 잘 써서 큰일을 했다는 비유일 것이다.
조조나 손권에게는 총명함이나 결단과 아울러 냉혹함이 느껴지는 반면 유비에겐 따뜻함이 있다.
유비는 어떤 땐 공사가 불분명할 정도로 정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 조조와 유비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유비 자신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조조는 다그치지만 나는 너그러우며, 조조는 사납지만 나는 어질며, 조조는 속임수를 쓰지만 나는 정성스럽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람을 잘 알아보고 부렸다는 점이다.
형님인 손책의 급서로 졸지에 권좌에 앉게 되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와 경륜이 많은 아버지의 노신들을 거느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노신들의 귀에 거슬리는 충언도 경청하고 때로는 젊은 패기로 적절히 달래면서 유연하게 처신하였다.
주유, 노숙 같은 슈퍼급 인재들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통도 컸다. 유비가 정에 끌리는 성품이었던 반면 손권은 공사구분이 엄격한 군주였다.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손권이 형님인 손책 밑에 있을 때 늘 사사로이 용돈을 많이 쓰려고 경리 참모였던 여범과 주곡을 조르곤 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여범은 한 푼도 더 주지 않아 손권의 원망을 샀고,
주곡은 손권이 사사로이 많이 쓴 사실을 적당히 덮어 주어 손권이 늘 고맙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손권이 오나라의 CEO가 되자 여범은 중용하고 자신을 도와 주었던 주곡은 장부를 속일 수 있다고 하여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잘하면 운이 열리고, 실수하면 운이 다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삼국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투는 적벽대전이지만 저자는 조조가 삼국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전쟁은
화북을 재패하고 있던 원소를 무너뜨린 관도대전임을 지적하고 있다.
젊은 손권이 적벽대전의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군주의 권위를 세우고 황제로 등극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관도대전과 적벽대전에 대한 분석도 아주 재미있지만 지면 관계로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저자는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순간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때 결코 계산만으로는 안 된다.
승패는 하늘에 맡기고 전력투구하는 수밖에 없다.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에서 나오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세계적인 기업들을 보면 몇 번이나 승부수를 던져 살아남은 것들이다.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마지막 승리자가 된 조조의 위대함을
저자는 비상한 통찰력과 때를 놓치지 않는 행동력에 있다고 분석한다.
조조는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비상한 능력을 가졌고
이런 능력은 갈수록 날카로워져 평생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승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30여 년간 기업현장에서 경제기자로 활약하였다.
이 책은 '포브스 코리아'에 2004년부터 3년간 연재한 글을 모아서 많은 부분 수정.보완해서 출판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출판된 거의 모든 종류의 삼국지를 다 모아서 비교 검토하였고,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하여 두 차례나 힘든 여행을 직접 다녀왔다.
그 여정이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개발되어 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아니라서
매우 힘들었지만 흥미진진했었다는 술회를 직접 들었다. 책 속에는 그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적절히 배치되어서 현장감을 더 해 주고 있다.
새로운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저자가 평소CEO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교훈의 예화로 삼국지를 선택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삼국지의 재미와 경륜 있는 경영고수의 은근한 훈수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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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 왜 '삼국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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